살해범, 피살자 심복에 미군 협력자
탈레반이 포섭 어려워…배후설 ‘흔들’
현장서 사살돼 범행동기 안갯속으로
탈레반이 포섭 어려워…배후설 ‘흔들’
현장서 사살돼 범행동기 안갯속으로
살해된 사람이 있다. 살해범도 밝혀졌다. 그런데 ‘왜’가 사라졌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동생으로 아프간 남부의 실력자로 불리던 아흐메드 왈리 카르자이(50)의 죽음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애초 탈레반의 소행이라는 ‘상식적’ 관측이 나왔지만, 살해범이 미군과 영국군 협력자였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범행 동기는 더욱 오리무중이 됐다.
카르자이가 지난 12일 칸다하르의 자택에서 경호원에게 사살당한 뒤 탈레반은 “침략군 협력자”를 처단했다며 책임을 인정하고 나섰다. 카르자이와 탈레반은 원수지간이어서 범행 동기는 이 정도로 설명되는 듯했다. 하지만 살해범이 탈레반이 쉽게 포섭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외신들은 카르자이를 저격한 사르다르 모함마드(35)가 일개 경호원 정도가 아니라 카르자이의 심복이었다고 전했다. 카르자이와 그 친인척들을 경호하는 경찰관 200여명을 이끄는 경호대장 격이었다는 것이다.
모함마드와 카르자이 형제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르자이 형제의 옆 동네에 살던 모함마드는 1990년대에 카르자이 형제와 그 아버지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소련 및 탈레반에 맞서 싸울 때부터 행동을 함께 했다. 그 인연으로 농부에서 경찰 간부로 변신한 모함마드는 거의 매일 카르자이를 만났고 격려금도 받아왔다고 한다. 그의 다른 친척은 “카르자이 집안과 우리는 한 가족 같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이뿐 아니라 모함마드가 칸다하르에 주둔하는 서구 군대의 주요 협력자였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15일 보도했다. 모함마드의 친척들은 그가 미군과 영국군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했으며 탈레반 수백명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한 친척은 “미군은 누군가 수상하다 싶으면 모함마드에게 체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런 증언 때문에 탈레반 배후설은 흔들리고 있지만 카르자이 쪽에서는 여전히 탈레반의 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형제 중 맏이인 마흐무드 카르자이는 모함마드가 최근 파키스탄 케타에서 탈레반 조직원들을 만나고 돌아와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모함마드의 친척은 그가 지난 20년간 파키스탄에 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 이웃은 “모함마드가 자신이 매우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탈레반에 고용됐을리 없다”고 말했다.
모함마드가 마약 중독자였으며 충동적 성향이 강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투리알라이 웨사 칸다하르 주지사 등이 그가 헤시시 중독자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추측이 난무하지만 모함마드는 범행 직후 카르자이의 경호원들에게 사살돼 입을 열 수가 없는 상태다.
한편 장례식 이튿날인 14일 카르자이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던 칸다하르의 모스크에서 한 남성이 터번에 숨긴 폭탄을 터뜨려 5명이 숨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카르자이의 주검에서 시계가 사라진 사실도 이날 알려져 아프간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