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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평온한 테헤란엔 불만이 꿈틀댄다

등록 2011-08-01 20:57수정 2011-08-01 22:02

지난달 25일, 이란 제3의 도시 이스파한의 한 거리에서 차도르를 입은 두 여성이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가 걸려 있는 의류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란에선 여성들에게 히잡 착용 등 엄격한 복식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차도르 속에 화려한 의상을 입거나 염색과 파마를 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등 미용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파한/이정애 기자 <A href="mailto:hongbyul@hani.co.kr">hongbyul@hani.co.kr</A>
지난달 25일, 이란 제3의 도시 이스파한의 한 거리에서 차도르를 입은 두 여성이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가 걸려 있는 의류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란에선 여성들에게 히잡 착용 등 엄격한 복식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차도르 속에 화려한 의상을 입거나 염색과 파마를 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등 미용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파한/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재스민 혁명 멈춘 이란
선거로 정권교체·안전한 치안 ‘겉모습’
사복경찰 감시·신정정치 억압 숨겨져
젊은세대 변화 욕구…“바람 다시 불것”
뙤약볕이 쏟아지는 여름이지만 시리아·예멘·바레인에선 여전히 ‘중동의 봄’이 진행중이다. 지난 2월 이란에서도 중동의 봄바람에 ‘녹색’(야당의 상징색) 깃발이 거세게 나부꼈다. 서구 외신들은 물론 한국의 언론들도 금방이라도 이란에서 체제가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지난 19~26일 돌아본 이란은 나긋나긋한 봄바람이 잠을 청한 듯 조용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 이란의 다른 얼굴 40℃의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를 달구는 한낮의 테헤란 거리는 400만대(이란 전체 차량의 70%)의 차량들로 매시간이 ‘러시아워’였다.

그 길 한쪽으로 각양각색의 히잡을 쓴 여성들이 바쁘게 걸어갔다. 눈만 내놓도록 만들어 여성 억압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부르카’를 입은 여성은 거의 찾을 수 없었고, 젊은 여성 대다수는 마지못해 머리 끝에 살포시 스카프를 얹은 시늉만 낸 듯 보였다. 또 히잡 속의 화려한 욕망까지 막지는 못한 듯, 그랜드 바자르 등 테헤란 시장 곳곳에선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와 염색약, 가발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여성끼리 테헤란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도 일상적인 듯했다. 외교통상부의 해외 안전여행 정보를 봐도 이란은 “강력한 경찰력을 보유하고 엄격한 형법 집행을 통해 비교적 치안상태가 안전”한 곳이다.

“미국에 죽음을”이란 펼침막이 내걸린 거리의 한쪽 비디오대여점에는 미국산 애니메이션이 걸려 있고 테헤란 부촌이 몰린 북쪽 지역엔 구치·루이뷔통 등 명품 매장이 즐비했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가 따로 없었다. 타즈리시 광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아메드는 미국산 캐딜락 자동차를 보고 “코리아 굿, 재팬 굿, 아메리카 베리베리베리 굿”이라고 외쳤다. 미국은 싫지만 미국 물건까지 싫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 중동을 보는 이란의 눈 <시엔엔>(CNN)이나 <비비시>(BBC) 방송 등 서구의 카메라가 비추는 이란의 모습에 익숙했던지라, 맨눈으로 만난 이란의 이런 모습은 ‘낯섦’ 그 자체였다. 다라케에서 만난 카페 주인 레자는 이런 놀라움이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 (더러운) 재떨이가 있다. 하지만 재떨이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시원한 음료수도 있고, 맛있는 빵도 있다. 그런데 서구 외신들은 애써 더러운 재떨이에만 주목한다.”

레자는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란의 상황과 등치시키는 것에도 불쾌하다는 시각을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다”는 자부심이 마음 밑바탕에 깔린 듯했다. 레자의 이런 시각은 정부 당국자의 반응과도 다르지 않다. 라민 메흐만파라스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아예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1979년 이란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혁명 이후 대선과 총선 등 30번의 선거를 치렀고, 국민들의 손으로 개혁파(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모하마드 하타미)와 보수파를 오가는 선택을 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독재자들이 통치해온 다른 나라들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 꿈틀거리는 ‘불만’ 하지만 이란의 ‘평온’은 소독된 병실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한참을 얘기하던 사람들은 “내 이름을 쓰진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5개월여 전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시위 대오가 가혹한 탄압으로 무너지고, 언제 어디서든 사복경찰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공포’의 기억이 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 등 야당 지도자들과 개혁 성향의 공무원과 언론인, 학생 등 수백명이 가택연금되거나 투옥돼 손발이 묶여 있다. 신문·잡지 등 출판물이 3000여개에 이르지만, 정부의 입맛에 따라 매년 200여 개가 폐간되고 새로 생겨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은 정부 산하의 중앙 전송소에서 사전 검열을 거쳐 송출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아예 접속조차 금지돼 있다. 이란 제3의 도시 이스파한에서 만난 엔지니어 무함마드는 “이란은 북한만큼이나 제한이 많은 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를 가장 참지 못하는 건 ‘젊은 세대’다. 전통음식 케밥에 코카콜라를 곁들여 마시고 위성방송으로 서구 문물을 접한 젊은이들은, 이란혁명의 대의에 동감했던 옛세대들과는 달리, 강요와 억압으로 가득 찬 ‘신정정치’에 유감이 많다. 20대 청년 아메드는 “모든 것에 간섭하려 하는 정부에 화가 난다”며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서방의 오랜 제재로 경제사정은 나날이 나빠지는데도 서구와 각을 세우기 바쁜 정치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사업가 아즈카는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지금은 다들 조용히 있지만, 선거를 앞두고서 또 한번 큰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테헤란/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미국은 싫어도 스타벅스는 환영

오랜 경제제재에 민심 흔들…물가난·계층 갈등 ‘화약고’

이란 제3의 도시 이스파한의 아르메니안 거리에는 미국 문화의 상징 ‘스타벅스’가 있다. 젊은이들은 “스타벅스 간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이 커피숍의 이름은 ‘마르세유’다. ‘짝퉁’ 스타벅스다. 메뉴판에 네스카페, 일리 커피와 함께 스타벅스 커피가 있을 뿐이다.

커피숍 주인 나스린은 두바이에서 스타벅스 커피 원두를 사갖고 와서 판매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가 좀 유명해지라고 스타벅스 로고를 구해서 붙였다”고 멋쩍게 얘기했다.

미국 주도의 오랜 경제제재를 증오하면서도 미국 문물엔 익숙해진 이란의 역설적 풍경이다. 하지만 오랜 제재 속에 경제난이 가속화하면서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개혁 조처는 서민들의 불만에 불을 당겼다. 정부 보조금 폐지로 기름값, 전기·가스료, 빵값 등이 3~7배까지 올랐다. 일부 상인들은 부를 쌓으며 신흥 상류층으로 커가고 있지만,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지며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수도 테헤란 등에선 최근 노상 강도나 절도, 오토바이 날치기 등 생계형 범죄가 늘고 있다.

높아지는 실업률도 고민이다. 최근 이란 정부가 밝힌 실업률은 11.5%지만 실제로는 20%를 넘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연간 75만~125만개의 신규 고용이 필요하지만, 실제 일자리 창출은 45만개에 그친다는 게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설명이다.

특히 이란의 대졸자 중 40%가 실업자로 추정되는 등 고학력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인구의 60% 이상이 30살 이하인만큼 이란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억압에 대한 불만이 높은 젊은이들이 경제적 불만으로 똘똘 뭉칠 경우 ‘이슬람 체제’를 위협할 세력으로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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