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이 거의 와해된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제2의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반군끼리다.
현재 반정부 세력의 구심점은 과도국가평의회다. 봉기의 진원지인 동부 도시 벵가지에서 결성된 이 조직은 정부를 표방하며 전세계 32개국으로부터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다. 카다피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내다 지난 2월 반군 진영으로 망명한 무스타파 압둘잘릴이 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 출신들과 리비아 동부의 반정부 세력이 결합했기 때문에 안정성과 대표성, 화합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조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은 21일(현지시각) “과도국가평의회가 사회의 모든 부문들과 접촉해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수도 트리폴리로 진입한 무장세력이 과도국가평의회의 직접지휘를 받는 이들이 아니라는 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트리폴리를 장악한 것은 주로 트리폴리 동쪽 도시 미수라타와 트리폴리 남쪽의 나푸사 산맥에서 온 병력들이다. 리비아 동쪽을 장악한 과도국가평의회 쪽이 아니라 서부 세력이 수도를 장악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서부 반군 세력이 동부 세력의 집권에 반대할 경우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미수라타 반군 지도부는 “과도국가평의회의 지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미 선언했다. 이들은 트리폴리에 대한 공세를 위해 벵가지의 과도국가평의회 쪽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반응이 변변찮았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서부 반군의 한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트리폴리를 점령한 뒤 반군 세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대학살이 일어난다”며 반군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도국가평의회 내부의 난맥상도 본격적 권력투쟁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과도국가평의회에는 다양한 이해를 지닌 여러 부족의 무장세력이 참가하고 있다. 이 조직의 수장 압둘잘릴 등은 봉기 직후까지 카다피 정권에 ‘부역’을 해온 인물들이라 정통성 시비도 만만찮다.
이렇게 복잡한 사정과 각 부족들의 고립주의적 성격을 생각하면 당분간 평화와 화합보다는 분열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리비아가 동·서로 갈라지거나, 과거 유럽의 식민통치 때처럼 3개 지역으로 쪼개질 것이라는 전망이 다시 나오는 이유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