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연보
트리폴리 소재 오리무중…반군들 추적 나서
투항 거부한 후세인처럼 이미 도피했을수도
투항 거부한 후세인처럼 이미 도피했을수도
‘42년 반미 투사’는 어떤 식으로 긴 싸움의 끝을 준비하고 있을까?
반군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관저 밥 알아지지야까지 포위하면서 카다피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후의 항전을 다짐하는 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내전의 대미가 어떤 식으로 장식될지는 불확실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유혈사태를 멈출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카다피가 자신의 정권이 끝났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백기투항을 요구했지만, 카다피는 “최후의 피 한방울까지 쏟겠다”며 불퇴전의 결의를 보였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밥 알아지지야 주변에서 포격음이 끊이지 않는다며, 반군이 카다피의 소재 확인에 나섰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카다피의 과거 행적을 보면 추적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도피 능력은 미국이 키워줬다. 1986년 미군이 카다피의 관저에 맹폭을 가해 그의 양딸을 비롯한 100여명이 숨진 뒤로 카다피는 사막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등 수시로 숙소를 바꿔왔다.
아들들이 잇따라 붙잡히는데도 카다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항복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한테 우호적인 나라로 몰래 달아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는 반군 손에 잡히면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겨져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과의 악연을 마지막으로 정리할 상황에 놓인 카다피의 운명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미국과 밀월관계를 즐기기도 했던 후세인은 1991년 쿠웨이트 침공을 계기로 미국과 틀어졌고, 결국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정권을 내놓고 8개월여의 도피생활 끝에 교수대에 세워졌다.
카다피는 후세인보다 이데올로기적이고 근본적인 동기에서 미국과 맞서온 인물이다. 1969년 27살의 나이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그는 직접민주주의와 이슬람적 요소를 결합한 ‘아랍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체제 실험을 벌였다. 개혁정책들이나 서구에 맞서는 그의 모습은 1956년 영국으로부터 수에즈운하를 빼앗아 아랍의 영웅으로 떠오른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의 분신으로도 비쳤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구호는 언제부터인가 독재의 가림막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는 제2의 사담 후세인이 되는 게 두려웠던 듯, 2004년에는 대량파괴무기 포기 선언을 하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그러는 중에도 독재가 계속되고 2대 세습까지 예고되자 나라 안의 불만은 커져갔다.
카다피가 의지할 데가 사라진다면 후세인처럼 단신으로 도피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로서는 따르지 않고 싶었던 후세인의 운명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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