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방이 리비아에 군사개입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것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타도 이후였다.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는 이제 서방의 제한적 군사개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리비아는 세가지 모델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집트 모델] 질서있는 권력이양으로 친서방 정권 수립
서방이 바라는 최선의 경우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처럼 과도정부를 이끌 확실한 주체 세력이 등장해, 질서있는 권력이양과 안정적인 친서방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희망적이다. 애초 우려됐던 서방의 지상군 투입은 없었고, 일찌감치 구성된 과도국가평의회는 이미 전세계 32개국가로부터 합법정부로 승인받았으며, 일부 잡음은 있지만 국내에서도 도전할 수 없는 지도력을 인정받는다. 제프리 펠트먼 미 국무부 근동담당 차관보는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전국 반군들 사이의 밀접한 소통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라크의 전례를 거울삼아 몇주 전부터 반군 대표들과 미국과 유럽 쪽은 카타르에서 은밀한 협의를 하며, 정부 수립의 바탕을 다졌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반군 대표들도 이라크 내전을 악화시켰던 바트당(사담 후세인의 당) 출신 숙청 같은 일은 없을 것이고, 공개적이며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워싱턴 관리들은 전한다.
물론 고분고분한 친서방 국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과도국가평의회가 22일(현지시각) “나토 등 서방군 기지는 리비아에 없을 것”이라고 선 그은 것과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아랍지역에서 시민 혁명을 통해 새로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은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면 독자적인 길을 간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고 23일 지적했다.
[이라크 모델] 카다피군 저항군화·반군 분열, 내전 장기화 하지만 비관적 전망도 있다. 트리폴리 함락은 반군의 전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나토의 공습으로 인한 길터주기로 이뤄졌다. 이라크 내전도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 시작됐다. 이라크의 정예 혁명수비대 세력이 점령 이후 반군의 주요 무력으로 환골탈태한 것처럼, ‘카미스 여단’ 등 카다피 정권 세력들이 나토의 작전 뒤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또 리비아의 유력한 5~6개 부족 세력 사이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이번에 트리폴리를 점령한 서부 산악지역 출신의 반군세력과 벵가지에 본부를 둔 동부 반군세력을 주축으로 한 과도국가평의회 사이의 갈등도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서부 반군세력은 카다피 아들을 국제전범재판소에 넘기겠다는 것도 주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불만을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이라크처럼 과도정부는 구성되나, 종족, 종파 간의 전선 없는 내전상황이 우려된다. [아프간 모델] 이슬람세력 내전 종식·집권…서방에 최악 서방이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모델이 되는 경우다. 1980년대 말 친소정권 붕괴 뒤 무장군벌 사이의 오랜 내전과 이에 등을 돌린 민심을 업은 이슬람주의 세력이 전격적으로 내전을 종식하고 정권을 잡은 아프간 상황이 리비아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달 반군 총참모장인 압둘파타흐 유니스가 내부 세력에 의해 피살된 사건은 반군 내 대립 양상과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공포를 잘 드러낸다. 벵가지 반군 지도부가 이 사건의 배후를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선전한 것은, 잠재된 이슬람주의 세력의 부상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카다피 정권 시절 극심한 탄압으로 리비아 내 이슬람주의 세력, 또 알카에다 등 국제 이슬람테러세력은 미미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한때 만만치 않은 세력을 보였던 알카에다 지부 ‘리비아 이슬람 전투 그룹’ 등 이슬람무장세력도 존재한다. 내전과 분쟁은 이들 세력이 커지는 토양이 될 것이다. 탈레반처럼 정권은 잡지 못하더라도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서 이슬람주의의 배후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이라크 모델] 카다피군 저항군화·반군 분열, 내전 장기화 하지만 비관적 전망도 있다. 트리폴리 함락은 반군의 전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나토의 공습으로 인한 길터주기로 이뤄졌다. 이라크 내전도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 시작됐다. 이라크의 정예 혁명수비대 세력이 점령 이후 반군의 주요 무력으로 환골탈태한 것처럼, ‘카미스 여단’ 등 카다피 정권 세력들이 나토의 작전 뒤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또 리비아의 유력한 5~6개 부족 세력 사이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이번에 트리폴리를 점령한 서부 산악지역 출신의 반군세력과 벵가지에 본부를 둔 동부 반군세력을 주축으로 한 과도국가평의회 사이의 갈등도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서부 반군세력은 카다피 아들을 국제전범재판소에 넘기겠다는 것도 주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불만을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이라크처럼 과도정부는 구성되나, 종족, 종파 간의 전선 없는 내전상황이 우려된다. [아프간 모델] 이슬람세력 내전 종식·집권…서방에 최악 서방이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모델이 되는 경우다. 1980년대 말 친소정권 붕괴 뒤 무장군벌 사이의 오랜 내전과 이에 등을 돌린 민심을 업은 이슬람주의 세력이 전격적으로 내전을 종식하고 정권을 잡은 아프간 상황이 리비아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달 반군 총참모장인 압둘파타흐 유니스가 내부 세력에 의해 피살된 사건은 반군 내 대립 양상과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공포를 잘 드러낸다. 벵가지 반군 지도부가 이 사건의 배후를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선전한 것은, 잠재된 이슬람주의 세력의 부상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카다피 정권 시절 극심한 탄압으로 리비아 내 이슬람주의 세력, 또 알카에다 등 국제 이슬람테러세력은 미미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한때 만만치 않은 세력을 보였던 알카에다 지부 ‘리비아 이슬람 전투 그룹’ 등 이슬람무장세력도 존재한다. 내전과 분쟁은 이들 세력이 커지는 토양이 될 것이다. 탈레반처럼 정권은 잡지 못하더라도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서 이슬람주의의 배후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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