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입수…2000년대초 반정부 인사-테러정보 교환
서방의 정보기관들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긴밀히 협력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의 대외 정보기관 MI-6가 리비아 정보기관에 테러 용의자의 신병과 정보를 넘겨주고 고문도 묵인해왔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일 폭로했다. 이런 사실은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무사 쿠사 전 리비아 외무장관의 집무실 등에서 수천건의 기밀문서들을 입수하면서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은 2002~2004년 다수의 이슬람 무장조직원을 납치해 카다피 정부에 넘겨줬다. 영국 MI-6도 리비아의 반정부 인물들에 관한 상세 정보를 카다피 쪽에 제공했다. ‘테러 정보 획득’(서방)과 ‘반정부 세력 근절’(카다피)이라는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무사 쿠사는 리비아 사태 초기에 민간인 학살 혐의로 국제 인권단체들의 체포 요구가 빗발쳤던 인물로, 지난 3월 영국을 거쳐 카타르로 망명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CIA는 리비아 정보기관에 이슬람 무장조직원들을 넘겨주면서 자신들이 알고 싶은 질문도 함께 전달했다”며 “문서들로 미뤄볼 때, CIA가 심문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리비아에 넘겨준 인물에는 현재 리비아 반군 지휘관인 압델하킴 벨하지(45)도 포함돼 있다. 벨하지는 2000년대 초 카다피 정권 전복을 시도하다 실패한 바 있다.
2004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리비아를 방문해 카다피를 베두인 천막에서 만났을 때 카다피의 연설문 작성을 도와주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인디펜던트>는 “영국 총리실이 양국 정상의 천막 회담을 선호한 것은 아마도 언론인들이 그러길 원해서였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CIA 대변인은 문건들에 대한 언급을 거부하면서도 “미 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외국 정부와 협력하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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