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공개 ‘사살 미스터리’
“”“과도정부군이 끌고가던중 총성”
일각선 “카다피 경호원이 쐈다”
유엔 인권대표 “사망과정 조사”
“”“과도정부군이 끌고가던중 총성”
일각선 “카다피 경호원이 쐈다”
유엔 인권대표 “사망과정 조사”
카다피를 쏜 총의 방아쇠는 과연 누가, 왜 당겼는가. 20일 아침(현지시각) 최후의 저항 거점이던 시르트의 함락과 동시에 숨진 리비아의 전 국가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초기 부상을 입었지만 멀쩡히 살아 있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그의 죽음 과정에 대한 미스터리가 깊어지고 있다. 생포됐다면 그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정에 설 터였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증인들의 말을 종합해 그의 체포 당시를 재구성했다. 카다피는 이날 15대가량의 무장 호송차량과 함께 시르트 서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 행렬을 발견한 프랑스 전투기는 폭격을 가해 차량을 모두 폭파했다. 카다피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몇명의 호위대원과 함께 고속도로 옆에 있는 배수관 밑으로 숨었다. 과도국가평의회(NTC)군은 배수관 앞에서 교전을 벌였고, 카다피의 호위대원을 모두 사살한 뒤 그를 생포했다.
문제는 생포 이후다.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찍어 공개한 동영상에서 카다피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부축을 받은 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동영상 속에서 카다피를 둘러싼 과도정부군은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그를 폭행하고 ‘전리품’처럼 끌고 갔다. 또다른 비디오에서는 카다피가 끌려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그를 살려둬, 그를 살려둬”라고 소리쳤고 곧이어 총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카메라는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과도국가평의회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카다피를 구급차에 실은 채 미스라타로 옮기다가 숨어 있던 카다피 친위군과 교전이 벌어졌고, 교전중 카다피가 머리에 총을 맞아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법의학자가 조사한 결과 그를 죽인 총알이 카다피군의 것인지 과도정부군의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검시 담당의 이브라힘 티카는 이날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체포됐다가 숨졌다”며 “내장을 관통한 총알 한 발이 주된 사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은 또다른 평의회 관계자의 말을 따 “과도정부군이 카다피를 생포했지만, 그를 끌고 가는 동안 카다피를 구타했고, 그를 죽였다”라고 다른 증언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교전에 참가한 한 과도정부군은 “(생포되지 않도록) 카다피의 경호원 중 한명이 카다피의 가슴에 총을 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엇갈리는 주장 속에서 분명한 점은 카다피가 생포되지 않고 죽음으로써 이득을 보는 당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가디언>은 카다피가 살아서 재판을 받았다면 리비아 내에서 친카다피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그의 죽음이 과도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크게 덜어줬다고 분석했다. 또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카다피가 자신들과의 뒷거래를 무차별 폭로할까봐 마음을 졸였던 유럽 국가들과 대형 석유기업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다피의 주검은 이날 미스라타의 한 사원으로 옮겨져 일반에 공개됐다. 웃통이 벗겨진 채 바닥에 놓인 독재자의 시신 사진을 찍기 위해 미스라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고 미국 <시비에스>(CBS)는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카다피의 주검이 곧 비밀 장소에 매장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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