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공개…새 가설 제시
가장 오래된 2000년 전의 구약성서 문서로 유대인과 예수의 역사에 대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쿰란 동굴의 ‘사해문서’에 대한 최신의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라이브 사이언스>는 지난 21일 새 발굴 조사에서 사해문서에 대한 새로운 가설과 증거가 제시됐다고 보도했다.
먼저 사해문서를 누가 썼을지에 대해 1950년대 쿰란 동굴 지역을 처음 발굴한 프랑스의 롤랑 드보는 당시 이곳에 거주했던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인들이 사해문서를 썼고 동굴에 보관했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발굴된 물웅덩이를 세례 장소로 봤고, 여러 먹물통이 발견된 방을 집필실로 여겼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 유물국의 이츠하크 마겐과 유발 펠레그의 발굴 조사에서는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피난민들이 이 문서를 예루살렘에서 이 동굴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했다. 기원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에세네인이 아니라 군인 또는 보통 사람들로 사해문서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사해문서가 아마포에 싸인 이유에 대해서도 기존의 연구들은 이것이 흰 옷을 주로 입었던 에세네인들의 관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봤다. 고대의 유대 작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도 “에세네인들은 피부를 건조하게 하고 늘 흰 옷을 입었다”고 썼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로버트 카길 교수도 “그들이 에세네인이건 아니건 발견된 그릇이나 옷감은 어떤 종파의 사람들이 공동 생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펠레그는 요세푸스가 에세네인들이 흰 옷을 입었다고 썼을 뿐이며,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 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신 펠레그는 아마포가 당시 종교인들의 옷감이었으며, 사해문서를 책임졌던 종교인들이 동굴에 보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입었던 옷감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마지막으로 사해문서와 여성의 관계도 새로이 제시됐다. 이스라엘 유물국의 유기물 큐레이터인 오리트 샤미르는 “이곳에서는 실잣는 일과 관련된 유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곳에 여성이 없었고, 이 천들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해문서 역시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큼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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