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민주화, 군주국 확산
아랍 민주화 운동의 격랑이 완고한 왕정국가들마저 바꿔놓고 있다.
이집트·튀니지·리비아·예멘 등 반정부 시위가 격렬했던 공화제 국가의 독재자들이 이미 쫓겨난 데 이어, 모로코와 쿠웨이트 등 군주제 국가들에서도 왕실이 거센 민주화 요구를 자의반 타의반 받아들이는 추세다.
쿠웨이트의 셰이크 사바 알아흐메드 알사바 국왕이 28일 셰이크 나세르 알모하메드 알사바(71) 총리가 왕실에 제출한 내각 전원 사직서를 수용했다고 <쿠웨이트 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왕족인 사바 가문 출신의 나세르는 2006년 총리 지명 이래 무능과 부패 혐의로 야권과 국민들의 끈질긴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그는 지금까지 세 차례나 의회를 해산하며 버티다가, 끝내 왕정국가 내각으론 처음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쿠웨이트는 형식적인 총선으로 의석 50석의 의회를 구성하지만, 공식적으로 정당 결성이 불법이다. 국왕이 황태자 중에서 총리를 임명하고, 의회 해산권을 포함해 입법과 사법까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봉건적 절대왕정에 가깝다. 중요 각료직도 왕족이 독식한다. 이 때문에 개헌이 되지 않는 한 근본적 변화엔 한계가 있지만, 최근엔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바 국왕은 나세르 내각의 총사퇴를 받아들이면서도,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나세르 총리가 비상 국정을 이끌어달라고 지시했다. 쿠웨이트 야권은 내각 총사퇴를 환영하며, 새 총리 지명과 의회 해산, 다음 총선때까지의 과도정부 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이날 쿠웨이트에선 사상 최대규모인 9만여명이 의회 해산과 지난 16일 의회 점거시위 때 체포된 활동가 24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모로코에선 지난 25일 총선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민주화에 한발 더 다가섰다. 지난 7월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내용의 개헌에 따른 정치 일정이다.
이번 선거에선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PJD)이 전체 의석 395석 중 107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중도보수 성향의 독립당이 60석, 중도좌파인 사회주의진보세력연합 39석으로 뒤를 이었다. 압델리라 벤키라네 정의개발당 대표는 총선 결과가 확정된 뒤 “우리 당의 승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전진”이라고 선언했다.
정의개발당은 “모로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력한 정부를 약속한다”며, 연정 파트너인 세속주의 정당들과 협력할 것임을 내비쳤다. 모로코의 전통적인 친서방 노선을 유지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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