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도 중단…그리스 등 부채위기 국가 타격
한·일도 의존 줄일듯…미 항모 호르무즈 해협 진입
한·일도 의존 줄일듯…미 항모 호르무즈 해협 진입
유럽연합(EU)이 이란 석유 금수 일정을 못박는 등 이란 제재를 본격화했다. 이번 조처는 지난해 말 미국의 이란 제재 확대 발표 이후 이란 석유 금수에 대한 첫 구체적 조처로, 제재 동참 방식을 고민중인 일부 아시아 국가들한텐 큰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럽 내부에선 그리스 등 부채위기 국가가 우선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련국들이 주시하고 있다.
유럽연합 외무장관들은 23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석유 구매와 관련해 이란과의 모든 접촉을 금지하고, 유럽연합 내 이란 중앙은행의 모든 자산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조처에는 이란산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입, 구매, 수송뿐만 아니라 관련 금융과 보험 등도 금지된다. 기존의 석유 관련 계약은 7월1일까지 유효하다. 즉 7월1일 이후에는 이란과의 모든 석유 거래가 중단되는 것이다.
이란산 석유 수출에서 유럽연합 쪽이 차지하는 몫은 약 20%이다. 특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현재 부채위기 국가들의 의존도가 높다. 그리스는 자국 석유 수입의 3분의 1이 이란산으로, 이란산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석유 소비에서도 이란산이 약 10%가 조금 넘는다. 이들 국가들은 부채위기로 인한 국가부도 상황에서 다른 석유공급처를 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란산 석유가 배럴당 1~2달러 정도 싼 것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는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더욱이 이란산 석유 금수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할 경우, 이들 국가에는 ‘엎친 데 덮친’ 상황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란산 석유 금수가 국제유가 앙등으로 번지게 하지 않으려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에 증산을 요청하고 있다. 사우디 등도 이란산 석유 공백을 채울 증산에 적극적인 태도여서, 당장 석유위기가 벌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미국 등은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이라크, 리비아, 가나 등 신흥 산유국들에도 생산량을 늘리도록 주문하고 있다.
문제는 이란 석유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대처이다. 이란 석유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은 미국의 이란 석유 금수 요청에 난색을 표하면서도, 이란 석유 주문을 줄이는 한편 다른 걸프 지역 산유국들과의 관계 증진에 나서는 등 줄타기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집중 공략 대상인 한국과 일본은 석유 금수 조처의 파장을 극대화하고자 유럽연합 쪽과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두 나라는 7월께면 이란산 석유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라는 분석이 일찌감치 나왔다.
유럽연합이 금수조처를 합의한 날, 미국은 이란의 세번째 은행 테자라트은행의 서구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발표해 이란의 목을 더욱 죄었다. 테자라트은행은 이란에 남은 몇 안 되는 서방거래 창구이다. 또 미국의 항모 에이브러햄링컨, 영국 해군의 프리깃함, 프랑스의 전함은 22일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해, 이란의 해협 봉쇄 위협 대처에 나섰다.
이란 경제는 통화 리알의 가치가 지난해 9월 이후 달러 대비 70% 이상이 떨어지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란 석유 금수조처가 미국 등 서방이 의도하는 이란 핵개발을 멈출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란 외무부는 이날 “(유럽연합의) 새롭게 취해진 가혹한 제재조처가 이란의 (핵)권리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현재의 세계 석유 수급 상황을 보아서, 이란 석유 금수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유럽 부채위기 국가, 특히 이 국가의 서민층과 이란 서민층, 그리고 아시아 국가의 서민층들이 이번 이란산 석유 금수조처의 첫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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