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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제국의 무덤, 아프간

등록 2012-02-27 21:46수정 2012-02-27 22:32

영·러·미 ‘침공-조약체결-무력저항 직면’ 역사 반복
코란 소각 소요사태 확산되자 “미국도 떠날 시간”
1841년 11월9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주둔중이던 영국군 8000여명은 병영에 갇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다. 아프간과 이슬람 관습을 모욕하는 영국군들의 방종으로 아프간 주민들의 전면적 봉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새해 1월1일 영국군은 협상 끝에 주둔군 가족 등 1만2000여명의 민간인을 포함해 1만6000여명이 인도로 철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철수 도중 아프간 부족들의 거센 공격을 받아 인도로 귀환한 영국인은 군의관 1명이 전부였다. 영국은 7개월 뒤 아프간을 다시 침공해 카불을 점령하고 보복을 가했으나, 한달 만에 철수해야 했다. 축출됐던 카불 통치자 도스트 무함마드도 다시 복위했다.

1차 영-아프간 전쟁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간 역사의 시작이다. 앞서 3년 전인 1838년 12월 영국은 아프간을 침공해, 악천후와 산악 지형에도 불구하고 6개월 만에 카불을 점령하고, 친영 대리정권을 세웠다. 영국군 불패 신화를 다시 확인하는 전쟁이었으나, 대리정권은 영국군 주둔 없이는 존속이 불가능했다.

37년 뒤인 1878년부터 벌어진 2차 영-아프간 전쟁도 똑같은 양상을 반복했다. 영국 침공, 5개월 만에 카불 점령과 보호조약 체결, 1년 뒤 아프간인 전면 봉기와 주둔군 사령관 피살 등 주둔군 궤멸, 영국의 보복과 카불 재점령, 영국군 철수로 이어진 것이다. 1919년 3차 전쟁 끝에 결국 아프간은 완전 독립하게 되고, 영국은 아프간을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영-아프간 전쟁은 당시 중앙아시아 패권을 놓고 벌인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게임’의 핵심이다. 영국은 남진하는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차지하면 인도까지 넘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인도로 오는 길목인 아프간을 선점하려 했지만 호된 대가를 치렀다. 영국의 이런 판단은 ‘러시아 공포증’에서 나온 치명적 전략오판으로 평가된다. 러시아가 인도까지 남진할 의도나 능력도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다.

아프간을 둘러싼 오판은 20세기와 21세기 들어서도, 소련과 미국에 의해 재연됐다. 1979년 12월 소련은 아프간 부족들의 전면적 봉기에 둘러싸인 카불의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전면적 침공을 했다. 당시 미-중 화해로 자신들이 포위된다는 위기감을 가진 소련은 이란의 이슬람 혁명 등을 틈타 중동과 서남아에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10년 뒤 소련의 해체로 이어지는 방아쇠 구실을 했을 뿐이다. 미국 역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자신들이 지원했던 탈레반 정권이 9·11 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와 그 지도자 빈라덴을 숨겨주고 있다며, 2011년 10월 전면적 침공을 단행했다.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현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을 세워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소련과 미국 역시 침공 초반에는 신속하게 아프간을 점령하는 듯했으나, 이후 아프간인들의 전면적 봉기와 저항에 시달리기는 영국과 마찬가지다.

최근 미군의 코란 소각 사건으로 인한 아프간 소요 사태가 확산되면서 10년 이상 장기화되는 탈레반의 반미 게릴라전에 덧붙여, 미국의 아프간 점령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이미 2014년 철수를 공식화한 상태에서 이번 사건은 미국 등 나토 연합군의 현지 장악력을 급속히 약화시키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나토 연합국은 아프간 정부를 지원하던 민간인을 철수시키고, 현지 대사관마저 폐쇄시키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26일 “앞서 영국인과 러시아인들이 허둥거리며 떠나는 것을 아프간인들은 지켜봤다”며 “영국과 다른 나토 동맹국들이 떠나려고 안달하고 있어, 이제 미국도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평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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