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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체중 4kg 아기…굶주린 엄마 “모유가 안나와”

등록 2012-06-18 20:16수정 2012-06-19 15:36

23개월 된 남자아이 압둘라 우푸가 엄마 비하라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아기는 악성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다.
23개월 된 남자아이 압둘라 우푸가 엄마 비하라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아기는 악성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다.
[2012 희망나눔] ‘세계 최빈국’ 니제르를 가다
앙상한 몸 휘감은 고통…아이는 그저 ‘눈물’만
어린이 대부분 악성 영양실조
한국인 온정모아 보건소 지원
엄마와 아이들 새벽부터 줄서
“수앙키?”(이름이 뭐예요?)

보라색 히잡을 둘러쓴 세이루바(43)는 부끄러운 듯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의 남단을 이루는 사헬 지대의 강한 햇살이 모녀의 얼굴에 내리쬐기 시작했다. “24개월 된 여자아이예요. 이름은 자키아구요.” 한국어를 프랑스어로, 프랑스어를 다시 현지 주민이 사용하는 하우사어로 바꾸는 복잡한 통역 과정을 거쳐 대화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머리털이 갈라진 자키아는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다.

자키아는 세이루바의 여섯째 아이다. 그가 아이를 데리고 보건소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초부터였다. 얼마 전 자키아의 오빠가 아팠을 때 이웃들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적이 있다. 아무래도 아이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한겨레>가 보건소를 찾은 지난달 18일, 세이루바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두시간 반을 걸어 니제르 진데르주 마가리아 지역에 자리한 반데 크레나스(영양실조통원치료센터)에 도착했다. 시설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지만, 앞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보건소 앞에 설치된 너른 텐트에는 아이를 품에 안은 아낙들이 빼곡했다.

니제르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것은 1890년대 무렵이다. 그러나 니제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없었다. 니제르는 나이지리아처럼 석유가 쏟아지는 지역도 아니고, 다른 서아프리카 나라들처럼 바다에 맞닿아 있지도 않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는 니제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세네갈의 다카르를 중심으로 시행됐다. 그래서 1960년 8월 독립 이후 프랑스인들이 떠나자 니제르에 남은 것이라곤 기초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명의 인구와 조밖에 기를 수 없는 황무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주요 수출품인 우라늄 값이 좋았던 1960~70년대에는 사정이 나았다. 그러나 방사능의 치명적인 위험성이 알려지며 우라늄 값은 계속 떨어지는 중이고,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 추세는 강화되고 있다. 그 와중에 세 번의 쿠데타가 터져 1999년에는 경제가 파산했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최근 들어 비가 내리지 않아 2005년과 2010년 대기근이 덮쳤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식량안보·생계유지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비조 단 카수아와 간호사 아루 마하주루가 자키아를 안아 체중계로 옮겼다. 아이의 키는 70㎝지만 몸무게는 겨우 5.6㎏이었다. 키 70㎝(기준 몸무게 8.2㎏)를 기준으로 6.9㎏을 넘지 못하면 영양실조, 6.2㎏을 넘지 못하면 악성 영양실조 판정을 받는다.

자키아에게 급히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한 영양식인 플럼피넛(물 없이도 먹을 수 있는 땅콩잼 모양의 영양실조 치료식)이 제공됐다. 아이가 플럼피넛을 잘 빨아먹자 세이루바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자키아의 아빠는 농사를 짓지만, 지금은 농사일이 많지 않아 다른 집 정원을 관리해주고 돈을 받는다. 당연히 수입은 일정치 않다. 니제르인들의 주식은 조지만, 지난해 니제르를 덮친 흉작으로 지난 5월 현재 2.5㎏들이 조 한 포대 값이 평소의 2배 이상인 650세파프랑(1454원)까지 치솟았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23개월 된 남자아이 압둘라 우푸도 악성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다. 태어난 지 31일 됐다는 아이의 여동생 란하나는 곁에 지켜선 엄마 비하라(25)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다. 비하라에게 “아침은 먹었냐”고 물었더니, 답이 없었다. 엄마가 먹지 못하면 젖이 안 나오고, 아이들은 굶어야 한다. 먹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기아와 병이 겹쳐 숨지게 된다.

그나마 이곳 아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져 온 한국인들의 온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2010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니제르 진데르 지역에 있는 반데, 야우리, 곰바 등 3곳의 통합 보건소와 17곳의 지역 보건소를 돕고 있다. 사업은 크게 △보건의료시설의 이용률 향상 △어린이 주요 질병에 대한 치료 역량 강화 △어린이 예방접종률 상승 등의 목표를 두고 진행중이다. 코이카가 지원하고 있는 보건소에 약이 있다는 소문이 돌다 보니, 주민들의 보건소 이용률은 모두 니제르 정부의 목표치인 42%를 두배 정도 뛰어넘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현지 직원 김원녕씨는 “곰바 보건소의 이용률(149.6%)은 100%를 넘었는데, 이곳 보건소가 잘 운영되는 것을 보고 다른 지역 주민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곳 크레나스에서 치료가 힘든 아이들은 입원시설인 크레니(영양실조집중치료센터)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다. 이튿날 진데르주의 마타메 지역의 크레니에서 만난 사피아 하사나(25)는 막내 아기 살리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는 “식량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12일째 모유가 안 나왔다”고 말했다. 겁이 난 엄마는 아이를 둘러업고 마타메 지역 둥구 마을에 있는 크레나스로 향했다. 아이 아빠는 자기 밭이 없어 다른 사람의 농사를 도와주고 품삯을 받는 가난한 농부다.

5월7일 입소할 때 4㎏이었던 살리수의 몸무게는 4.2㎏으로 늘어 있었다. 처음 입원했을 땐 코에 고무관을 끼어 영양분을 공급받았지만 이젠 제법 힘차게 엄마 젖을 빨 수 있게 됐다. 이곳 의사는 “일단 4.9㎏까지 살찌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13살인 큰딸 라히나가 동생인 마라리아(5)와 무스타파(3)를 돌보고 있다.

이제 치료를 다 받은 사디아는 엄마 품에서 건강하게 웃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땐 영양실조에 급성 폐렴이 겹쳐 위독한 상태였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서니 아이가 손을 뻗어 오른손 검지를 꼭 쥐었다. 아이에게서 시큼한 젖내가 났다.

“세앙지마, 사디아.”(잘 있어, 사디아.)

“나구데, 나구데.”(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의 엄마가 웃으며 답했다. 며칠 후 퇴원하는 사디아는 수확철인 10월까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다음은? 날카로운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마을 한가운데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먹먹한 느낌이었다.

마가리아·마타메(니제르)/

글·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화보] ‘세계 최빈국’ 니제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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