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 진데르주 마가리아 지역 단코레 마을의 아이들이 주식인 조를 빻은 가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니제르인들의 주식은 조 가루 반죽을 물에 걸쭉하게 끓여 먹는 곡물 수프 ‘불’이다.
니제르 진데르주 마타메의 와우 마을에는 우물과 모터펌프가 설치돼 있어 주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다.
마가리아 지역 촌장, 국제구호 SOS
영유아 사망률 줄고있지만 ‘미봉책’
펌프 받은 마타메 지역선 작물 쑥쑥 니제르 진데르주 마가리아 지역의 작은 마을 단코레의 촌장 알리 단 라비(60)는 골머리가 아프다. 집마다 가족 수는 많은데, 먹고살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니제르 엄마 한 명이 낳는 아이 수는 평균 6~7명, 그러다 보니 집마다 식구는 10명 안팎이다. 그렇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은 좁고, 기후변화로 최근엔 비도 잘 내리지 않는다. 촌장은 “2005년에 기근이 있었고, 2010년에도 기근이 있었지만, 올해 기근은 2010년보다 더 심할 것 같다”며 “풍작이 들어도 석달이면 식량이 떨어져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니제르를 포함한 서아프리카 사헬 지대의 식량위기, 그리고 그로 인한 기아는 이제 이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지난달 발간된 <세이브더칠드런>의 자료를 보면, 니제르의 5살 미만 영유아의 사망률은 1000명당 143명이고, 진데르주에서 그 수치는 269명까지 치솟는다. 이는 세계 최악의 유아 사망률이다. 유일한 수출품인 우라늄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1파운드에 65달러 전후에서 50달러 정도로 급락했다. 돈이 없는 니제르 정부는 국가재정의 절반 정도를 외국의 원조에 기대고 있다. 이러다 마을 전체가 굶어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라비 촌장은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현금 지급 사업을 신청했다. 그 덕에 지난 2월 중순부터 석달 동안 이 마을의 극빈 가구들에 한달에 2만세파프랑(약 5만원)씩 총 6만세파프랑의 현금이 지원됐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연 끝에 5살 미만의 아이가 많은 집, 가축 등의 재산이 없는 집 등의 기준을 마련해 전체 150가구 가운데 74곳의 지원 가구를 정했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집 앞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이사카 이디(45) 가족은 이번 현금지원 사업의 수혜자다. 그도 촌장처럼 “지난해 수확이 너무 적어 올해 식량위기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디는 돈을 받아 석달 동안 가족들이 먹을 조와 수수를 샀다. 그 덕에 아빠 품에 파고들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루마(2)와 라오레(3) 자매는 영양실조를 피할 수 있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사는 사데 야우(30)도 현금지원을 받았다. 그에게 남편의 사인을 묻자, “무슨 병인지 모르고 3개월 앓다 죽었다”고 말했다. 밭이 없는 그는 짚을 엮어 바구니를 만들거나 다른 집 밭을 매준 품삯으로 생활해 왔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다섯시간 정도 다른 사람의 밭을 갈아주고 받는 푼돈으로는 치솟은 식량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원된 현금이 아이들을 위한 식량을 사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자료를 보면, 마을 사람들은 현금지원을 받기 전에는 필요한 영양분의 85.2%밖에 공급받지 못했지만, 사업이 끝난 지금은 104%의 영양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식량안보·생계유지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비조 단 카수아는 “그래서 이 마을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임박한 위기를 넘기기 위한 ‘긴급조처’일 뿐이라는 사실은 마을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마당 한구석에 매어 놓은 염소 울음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라비 촌장이 입에 올린 말은 뜻밖에도 돈이 아닌 ‘모터펌프’였다. 그게 무슨 뜻일까. 이튿날 방문한 마타메 지역의 와우 마을에 해답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니제르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농업혁명’이 진행되는 중이다. 유럽공동체 인권지원청(에코)이 지하수를 끌어올려 밭에 물을 댈 수 있도록 우물과 모터펌프 시설을 설치해줬기 때문이다.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모터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와 물을 대고 있는 밭은 푸른 채소가 자라고 있는 데 견줘, 반대쪽은 기껏해야 조밖에 심을 수 없는 황무지였다. 농장에서 만난 젊은이 하나뷔(27)는 연방 싱글거리며 웃었다. 그는 “모터펌프가 생긴 뒤에는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됐고, 이를 팔아 돈도 많이 번다”고 말했다. 계절별로 11월~3월에는 양배추·상추·토마토·호박, 3~9월에는 고추, 9~11월에는 옥수수를 기른다. 밭의 면적은 4㏊로 좁지만, 이 밭에 기대 사는 23가구의 삶은 크게 변했다. 이런 농장이 진데르주 마타메 지역 11곳, 마가리아 지역 13곳을 합쳐 24곳이다. 주민들을 위해 땅을 파고 모터펌프를 설치하고 배수관을 놓는 데 에코의 지원금 40만유로(약 5억8000만원)가 쓰였다. 하나뷔는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이곳에서 채소를 길러 무려 25만세파프랑을 벌었다. 그는 이제 한돌을 맞은 아무르의 아빠다. 펌프가 생기기 전에는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거리에서 담배도 팔고, 물도 파는 잡부로 살았다고 했다. “나이지리아에 가서 돈은 얼마나 벌었나요?” “1천에서 운이 좋으면 5천세파프랑이지요.” “하루에요?”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석달에요.” 곁에서 일을 거들던 마라라주 아부(25)도 “펌프가 생긴 뒤 삶의 목표를 찾았다”고 말했다. 결혼을 일찍 해 다섯 아이의 아빠인 아부는 “저기가 아이들의 놀이터”라며 100m 정도 떨어진 망고나무를 가리켰다. 그는 “큰아이 바시르가 8살인데, 나이를 7살로 속여 올해는 학교에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니제르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은 7살이다. 지난해엔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있을 때와 지금의 생활은 비교할 수도 없다”며 “편안하고, 자유롭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촌장 아요 다기(47)는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한 다음에 다른 마을에서도 관개농업에 큰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며 “노동은 적게 들고, 수확은 많으니 모두가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마가리아·마타메(니제르)/ 글·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
| |
■ 김포공항 옆 20년간 숨겨진 비밀습지
■ 이석기 ‘애국가 발언’은 고도의 전략?
■ [정연주 칼럼] 알코올 중독자와 원숭이 검사
■ 블리자드 결국 백기…‘디아블로3’ 환불키로
■ 택시에서 분실한 스마트폰 어디로 갔나 했더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