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10년
종파·민족 분쟁 주변국으로 퍼지고
외부지원 기댄 불안한 정권 속속 등장
세력공백 틈타 무장세력 넓게 퍼져
테러 발원력만 키우는 결과 낳아
전쟁 수렁 속에서 미국도 쇠락
종파·민족 분쟁 주변국으로 퍼지고
외부지원 기댄 불안한 정권 속속 등장
세력공백 틈타 무장세력 넓게 퍼져
테러 발원력만 키우는 결과 낳아
전쟁 수렁 속에서 미국도 쇠락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한 달 전인 2003년 2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 영국 언론에 “지금은 우리 제국의 시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이 한세기 전에 자신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했던 것들을 지금 미국이 한다고 해서 이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침공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은 영국을 몰아세운 것이다.
이라크전 개전 40일 만인 2003년 5월1일 부시는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연안에 있던 항모로 날아가 갑판 위에서 임무 완수와 함께 사실상 종전을 선언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하지만 이라크전은 사실상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라크전은 중동 분쟁의 깊이와 넓이를 키웠고, 부시가 공언했던 ‘미국 제국의 시기’는 그 수렁에서 쇠락해갔다.
첫째, 9·11 테러에 대한 응징인 테러와의 전쟁 중심축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은 중동의 테러 발원력을 오히려 키우는 결과만 낳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이 주된 갈등 구도였던 중동 분쟁은 이라크전을 계기로 종파간, 민족간, 국가간, 계급간의 전면적이고 다기화된 구도로 확산됐다. 이라크에서 수니-시아파 종파 분쟁, 쿠르드족 분쟁이 본격화되며 주변 국가로 확산됐다. 이라크전이 뚜껑을 연 종파, 민족 분쟁은 시리아, 터키, 예멘 등지로 확산됐다.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전의 주요 공격 대상이던 알카에다 등 이슬람 국제 무장 세력은 아프간에서 밀려난 뒤 이라크전을 계기로 인근 예멘에 이어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이라크전 종전 즈음에 찾아온 ‘아랍의 봄’으로 인한 현지 정권들의 붕괴가 알카에다 등 세력의 확산에 결정적 조건이었으나, 이라크전이 발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사하라 이남인 말리로 내전이 확대됐다.
둘째, 이라크전은 중동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렸다. 이라크전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등 중동의 기존 현지 정권 붕괴를 몰고 왔다. 하지만 새롭고 안정적인 정부와 정권은 요원하고, ‘셰이키 레짐’(불안한 정권)이라 불리는, 미국 등 외부의 지원이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한 정권 일색이다. 아랍의 봄을 거치며, 이라크·예멘·리비아에 셰이키 레짐이 들어선 이후 시리아도 곧 이 대열에 합류할 태세이다.
이는 중동에 거대한 세력 공백을 낳으며, 중동뿐만 아니라 글로벌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과거 후세인 정권 등 중동의 현지 정권들이 반미·반서방이기는 했으나, 나름대로 통치능력을 발휘해서 지금과 같은 안보불안은 조성되지 않았다. 리처드 대넛 영국군 사령관은 “세력 공백이 조성되자, 알카에다 등이 뛰어들어 재앙의 씨를 뿌렸다”고 지적했다.
셋째,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우려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라크전 개전의 명분은 후세인 정권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이었으나, 이는 허위로 드러났다. 반면, 이라크전은 이란으로 하여금 핵개발 필요성을 더욱 자극했다. 중동에서 이란의 견제 세력인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이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며 핵개발로 치달았다. <비비시>(BBC)는 9·11 이후 악몽의 시나리오가 테러 조직의 손에 핵무기가 쥐여지는 것이었는데, 전쟁까지 치른 이라크가 아니라 이란으로 인해 그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은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문턱까지 온 이란의 핵개발은 이집트 등 중동 강국들 사이의 핵무기 개발 경쟁을 점화할 수도 있다.
넷째, 이라크전은 중동 분쟁의 범위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까지 확산시켰다. 이라크전과 한 묶음으로 시작된 아프간전의 종전 가능성이 요원한 가운데,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이슬람권의 최대 국가 중 하나인 파키스탄을 위협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파키스탄의 아프간 접경 지역은 이제 사실상의 독립지대로 변해서, 이슬람권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으로 인해 파키스탄의 체제 취약성은 더 커졌고,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 관리 능력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라크전 개전 당시 영국군 참모총장이었던 찰스 거스리 경은 16일치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전쟁에 뛰어들어간 것은 전적으로 무책임했다”고 인정했다. 이라크전 개전 주역 중의 하나인 딕 체니 당시 미국 부통령은 사우디의 외무장관으로부터 왜 전쟁을 고집하냐는 질문을 받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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