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앙카라 한복판 ‘키스 시위’
지하철역서 남녀 애정표현에
역쪽 “부도덕 행동 중지” 방송
정부도 지하철쪽 옹호 나서자
SNS로 모인 시민들 역앞 시위
‘이슬람주의’ 에르도안 총리 아래
위협받는 세속주의자들 ‘기습 저항’
지하철역서 남녀 애정표현에
역쪽 “부도덕 행동 중지” 방송
정부도 지하철쪽 옹호 나서자
SNS로 모인 시민들 역앞 시위
‘이슬람주의’ 에르도안 총리 아래
위협받는 세속주의자들 ‘기습 저항’
25일 오후 6시30분,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복판 쿠르툴루쉬 지하철 역 앞에 시민 200여명이 모였다. “주로 젊은 터키인들이었다”고 <알 자지라> 등 외신은 전했다.
이들은 작은 피켓을 준비했다. ‘자유로운 입맞춤’, ‘입맞춤은 당신을 위해 좋다’, ‘우리, 사랑할까’라고 적었다. 사랑의 밀어를 닮은 문장은 그들의 정치적 구호였다.
“우리는 입맞출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젊은이들이 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찰이 막았다. 카메라 기자들이 다가갔다. 앙카라의 젊은이들은 서로 안고 입맞췄다. 카메라 앞에서 입맞추는 게 이들의 목적이었다. 다만 애초 그들이 원했던 카메라는 지하철 역 안에 있었다.
지난 22일, 쿠르툴루쉬 역 구내 확성기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도덕에 맞는 행동을 합시다.” 무슨 영문인지는 나중에 알려졌다. 국영 지하철 당국은 “역내 보안 카메라에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승객이 포착됐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행위로부터 공중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부적절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남녀가 입맞췄다는 소식도 있지만, 그저 두 손을 꼭잡고 있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논란이 일자, 터키 정부 대변인은 “표현의 자유와 부도덕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밝혔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어느 시민이 ‘플래시몹’(번개 시위)을 제안했다. “그 지하철 역에서 자유롭게 입맞추자”는 제안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역 구내 보안 카메라 앞에서 떼거리로 입맞추자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결국 입맞춤에 성공했지만, 오래도록 입술을 포개고 있진 못했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청년 당원들이 곁에서 반대시위를 벌였다. “부도덕은 자유가 아니다”, “신은 위대하다”, “이슬람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경전을 옮겨온 준엄한 문장은 그들의 정치적 구호였다.
‘키스 시위’는 몇 분여만에 끝났지만, 두 무리의 정치적 구호에 담긴 긴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터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은 정부를 향해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보안카메라의 목적이 안전을 지키는 것인지, 도덕의 기준을 만드는 것인지, 도대체 누가 승객의 도덕성을 판단할 근거와 잣대를 갖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그 질의에는 ‘이슬람 율법 정치’를 주도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총리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의회 다수를 점한 정의개발당의 주도로 터키 의회는 지난주 ‘주류 단속 법안’을 통과시켰다. 밤 10시 이후 모든 공공장소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의료시설·카페·식당 등에선 주류 판매 자체가 금지된다.
이미 터키 항공은 모든 노선에서 주류 서비스를 중단했다. 최근 터키 항공은 여승무원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차도르를 유니폼으로 도입하려다 항의에 밀려 유보하기도 했다.
일련의 조처가 터키의 ‘국체’나 다름없는 세속주의·정교분리 원칙을 흔들고 있다고 반대파는 비난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은 1924년 만든 헌법에서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한다는 조항을 없앴다. 공공 장소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 이슬람 정당 폐쇄 등의 세속주의 조처도 뒤따랐다.
이후 세속주의는 군부, 검찰, 법원 등에 의해 옹호됐다. 반면 에르도안 총리는 2002년 이후 장기집권하면서 세속주의 세력의 지지기반을 잠식했다. 그가 군사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강화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슬람주의 정치 노선이 있다. 이슬람권의 대표적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가 이란식 ‘정교일치·신정정치’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안팎에서 이는 까닭이다.
오늘날의 터키 대중은 이슬람주의 쪽에 조금 더 쏠려 있다. 2010년 9월,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맞붙은 개헌 투표에서 58%가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는 내용의 새 헌법을 지지했다. 당시 국민투표를 앞두고 에르도간 총리는 “이슬람적 법률 제정을 가로막은 장군들과 법관들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파의 힘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세속 공화국 수립일인 지난해 10월29일, 수천명의 시위대는 국부로 추앙되는 케말의 묘지를 향해 행진하며 “터키는 세속주의 국가이며, 앞으로도 세속주의로 남을 것”이라고 열창했다. 25일 떼거리로 입 맞추는 젊은이들의 혀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수찬기자ahn@hani.co.kr
☞바로가기: [화보] 터키 ‘키스 시위 현장’ 이모저모
<한겨레 인기기사>
■ 일베, ‘5·18 왜곡 신고센터’에서까지 ‘막말 일탈’
■ MB, ‘노무현 4주기’에 1박2일 골프…논란 확산
■ 여자들이 남친에게 가장 짜증날 때 1위는?
■ 이천수 1464일 만에 골 넣자마자…
■ 검찰, 곧 원세훈 재소환 가능성
■ 일베, ‘5·18 왜곡 신고센터’에서까지 ‘막말 일탈’
■ MB, ‘노무현 4주기’에 1박2일 골프…논란 확산
■ 여자들이 남친에게 가장 짜증날 때 1위는?
■ 이천수 1464일 만에 골 넣자마자…
■ 검찰, 곧 원세훈 재소환 가능성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