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집권 1년 만에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며 ‘파라오’로 불렸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011년 ‘중동의 봄’시민혁명에 밀려 물러난데 이어, 이슬람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 대통령도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이은 군부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3일 오후 9시(현지시각)께 국영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된 연설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한 ‘48시간 최후통첩’시간을 3시간30분쯤 넘긴 시점이었다.
시시 국방장관은 “현행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다시 치르고 국가 통합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또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을 대통령 선거가 새로 치러질 때까지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의 퇴진 압박에도 사임을 거부해온 무르시는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약 1년 만에 대통령직을 잃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집트 전역에서 수백만명이 무르시 대통령 집권 뒤 사회, 경제적 혼란에 반발하면서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를 벌인 지 나흘 만이다.
시시 장관의 회견장에는 범야권 그룹 구국전선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이집트 최고 종교 기관 알 아즈하르의 수장인 아흐메드 알 타이예브 대 이맘, 이집트 콥트교의 교황 타와드로스 2세 등이 참석했다.
이날 군부가 무르시 축출을 발표하자, 반정부 시위대가 대규모 시위를 벌여온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환호와 축포가 터졌다. 카이로 시내 곳곳에서는 시민이 차량 경적을 울리며 군부의 개입을 환영했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 등 무르시 지지파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중동 정치의 핵심인 이집트는 시계 제로의 불투명한 위기 상황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무르시는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선출된 대통령이다. 군의 로드맵 발표는 쿠데타”라고 밝히며 끝까지 반발했다. 무르시는 현재 카이로의 공화국수비대의 병영 건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나 구금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무르시 찬반 세력이 투석전을 벌이고 있고 총성도 들렸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무르시 지지자들은 그동안 반정부 시위에 대항하고자 맞불 시위를 개최해 왔다. 무르시 지지자와 반대자 간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져 2일 밤부터 3일 오후까지 하룻동안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6월30일부터 지금까지 39명이 숨졌다.
국론 분열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론 분열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이슬람 세력과 세속·자유주의 진영 간 내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중동 전체 이슬람주의의 원조격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그동안 수십년 동안의 탄압 속에서도 민중 속에서 구호 활동 등을 펼치며 뿌리 깊은 기반을 가지고 있다. 무르시는 무슬림형제단이 배출한 첫 이집트 대통령이었다.
위기에 처한 무르시는 막판에 ‘연립 정부 구성’이라는 카드를 제시하는 등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신에게 헌법적 정당성이 있다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무르시 진영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해 무르시 진영은 ‘유혈충돌 없는 쿠데타는 불가능하다’며 결사항전을 외쳤지만, 2일까지 외교부·스포츠부 등 장관 6명이 사임했고, 대통령 대변인 2명마저 그의 곁을 떠났다. 한때 무르시와 동맹을 맺은 이슬람 수니파의 극보수 분파인 살라피그룹도 조기 선거를 지지한다며 무르시를 버렸다.
군부는 쿠데타 전인 이날 낮 국영 방송사도 장악했다. <에이피>(AP) 통신은 3일 낮 군의 정보국 간부들이 방송사 뉴스룸 안에까지 들어와 뉴스제작 과정을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국영방송은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정보부 장관이 관장하는 기관으로, 이 방송은 그동안 친무르시 성향의 보도를 주로 해왔으나 최근 이틀 동안 논조가 급격히 바뀌었다.
이집트 군부가 또다시 전면에 나서 무르시 대통령을 강제로 권좌에서 끌어내린 쿠데타에 대해 미국 백악관이나 국무부는 즉각적인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 며칠간 오랜 동맹인 이집트의 시위 사태에 대한 무르시 대통령의 대처 방식을 강하게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군부에 의한 사실상의 쿠데타를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그 결과를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축출을 선언하기 직전인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미국 정부)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이집트 사태에 대한 비난의 방점을 군부보다는 무르시에 두는 듯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키 대변인은 “무르시 대통령은 국민이 시위를 통해 드러내는 요구에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에게 더 많은 조처를 하라고 요구해왔다”며 “그럼에도 어제 발언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부도 이집트 군부 지도부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면서 사실상 상황을 관리해왔다. 조지 리틀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척 헤이글 장관이 전날과 지난주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과 두차례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관련화보] 카이로의 무장군인과 시민들
<한겨레 인기기사>
■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깔았던 호피는 어디로 갔을까?
■ 이 눈빛…차유람의 큐는 ‘칼’이었다
■ 평균 나이 75살…‘할배 4인방’ 예능에 떴다
■ [단독] “전두환, 상왕정치 노리고 수천억 비자금 조성했다”
■ [화보]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깔았던 호피는 어디로 갔을까?
■ 이 눈빛…차유람의 큐는 ‘칼’이었다
■ 평균 나이 75살…‘할배 4인방’ 예능에 떴다
■ [단독] “전두환, 상왕정치 노리고 수천억 비자금 조성했다”
■ [화보]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