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화가 유수프 압둘키(62)
시리아 전쟁 종식 선언 참여
압둘키 구명 운동 아랍권 번져
압둘키 구명 운동 아랍권 번져
끝을 알 수 없는 피바람을 그냥 견뎠다. 민주화의 열망이 살육의 극단으로 치달을 때에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왜 피난가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집에 불이 나면 도망가나? 남아서 불을 꺼야지.”
포탄이 옆집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극사실적인 목탄화로 전쟁의 폭력을 묘사했던 시리아의 화가, 유수프 압둘키(62·사진).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맞서 평화적인 저항운동을 펼쳐온 이 예술가는 결국 지난 18일 타르투스의 한 검문소에서 체포됐다고 <프랑스 24>가 보도했다.
1951년 시리아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압둘키는 다마스쿠스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7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몸은 외국에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독재에 신음하는 조국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회주의자로서 현 대통령인 바샤르의 아버지, 하페즈의 독재에 저항했던 그는 1978~80년 2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그뒤 프랑스로 다시 건너가 아랍의 독재자들을 풍자하는 정치성 강한 작품을 발표하며 명성을 쌓았다. 24년동안 프랑스에 살면서도 시리아 국적을 지켜온 압둘키는 지난 2005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지중해의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터를 잡았다. 2011년 3월 발발한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변해갔지만 그는 스튜디오를 지키며 그림을 그렸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생명이 사라진 빈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청년, 거대한 칼 옆에 쓰러져있는 작은 새 등엔 공포와 슬픔이 속속들이 스며들어있다.
압둘키의 지인들은 시리아 당국이 압둘키를 체포한 이유는 그의 그림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과 행동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시리아의 학자, 예술가들과 함께 평화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을 통해 전쟁을 끝내자는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 선언문은 아사드가 물러나고 유엔 감시 하의 과도정부를 세워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안을 담고 있다. 아사드의 독재냐, 극단적 이슬람주의냐의 이분법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수천명의 서명인 가운데 시리아를 떠나지 않은 단 2명의 예술가 중 한명이었다.
<로이터>는 아랍권 안팎의 예술가, 문인, 배우 등 700여명이 압둘키의 구명운동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당신들이 예술과 창조성의 빛을 깨닫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 창조적인 영혼을 억누르려는 시도들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며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유수프 압둘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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