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시민혁명으로 축출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85)과 이후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의 지도부가 ‘시위대 살해’라는 같은 혐의로 같은 날 법정에 서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됐다고 25일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석방 명령을 받고 풀려난 지 사흘 만인 25일 카이로 교외의 법정에 나타났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반정부 시위대 850여명을 숨지게 한 유혈 진압에 연루된 혐의로 재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혈 진압과 관련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올 1월 항소심에서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재심 명령을 따낸 데 이어 검찰이 제기한 별건의 부패 혐의들에 대해 차례로 무죄 선고를 받아냈다.
이날 카이로의 다른 법정에선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주역이자 이후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배출한 무슬림형제단의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바디에와 간부 32명의 재판도 함께 열렸다. 바디에는 안전 문제로 재판에 나오지 못했지만, 주요 간부들은 시위대 살해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이들은 지난 6월 말 무슬림형제단 본부로 몰려와 무르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반정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9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디언>은 ‘아랍의 봄’이 끝과 시작을 가져다준 두 집권세력이 공교롭게도 같은 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된 상황을 두고 “두 체제에 대한 재판”이라며 “이들 재판은 이집트가 어디로 흘러왔는지를 드러내는 은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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