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보수파 등 주장에 떠밀려서
타격 이후 시나리오도 없이 결정
내전 고착화 등 사태 악화될수도
러 “미 개입, 상황 악화시킬 것”
영국, 29일 의회 소집 표결키로
타격 이후 시나리오도 없이 결정
내전 고착화 등 사태 악화될수도
러 “미 개입, 상황 악화시킬 것”
영국, 29일 의회 소집 표결키로
“전략적 목표가 없는 전술적 행동은 초점을 잃게 되고 역효과를 낸다. … 어느 해군 장교라도 토마호크 미사일 30~40발을 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전략 입안자들이 이런 전략이 어떻게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이 ‘초읽기’ 단계에 들어선 가운데, 미국의 ‘외과적 공습’(정밀폭격) 전략을 입안한 크리스 하머 미국전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군사개입 계획에는 전략적 목표가 없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공격의 ‘범인’으로 시리아 정부를 단정적으로 지목하며, 미사일 폭격 등 군사개입 계획을 공언하고 있지만, ‘군사개입 이후 시리아’에 대한 시나리오가 분명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미국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시리아 문제에 대해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는 ‘아사드 이후 시리아’를 담당할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시리아를 ‘테러지원국’ 등으로 지목해 왔지만, 실제로는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많은 협조를 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을 견제하면서, 중동에서 세력 균형추 구실을 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를 비롯한 미국 정부 관리들은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하더라도 ‘제한적 외과적 공습’에 그칠 것이라며, ‘아사드 정권을 제거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아사드가 몰락한다면 시리아 내전의 반군 진영에 몰려 있는 알카에다 등 반미 이슬람 무장세력의 힘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이 가진 화학무기가 이슬람 무장세력에 넘어가는 사태도 우려한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조심스런 전략에도 불구하고 군사개입은 결국 아사드 정권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어 내전을 고착화하고, 이슬람 무장세력만 강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바마 행정부가 강조해온 이슬람권과의 화해 정책의 틀이 무너질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의 주장에 떠밀려 군사개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보수적 군사전문가이자 <아메리칸 인터레스트> 편집주간인 월터 러셀 미드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장문의 기고를 실어 오바마 행정부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터키의 정의개발당 등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과 연대해 극단 이슬람주의 세력을 고립시키고 중동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겠다는 전략은 대실패로 귀결됐다고 비난했다. 그는 중동의 주요 친미 동맹세력인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이집트 군부,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로 나아가야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는 10년 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당시를 닮아가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건너뛰고 이스라엘과 사우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의 일방적 지원과 무력으로 밀어붙이려는 뜻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 역시 무력 개입에 맞장구치고 있지만 공개토론과 찬반 표결을 요구하는 의회의 반발에 부닥쳤다. 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9일 표결을 전제로 의회를 소집하는 등 일단 미국 정부의 강경 보조에 맞출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은 26일 <시비에스>(CBS) 방송에 출연해 “무력 개입으로 진정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개입 반대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내전의 결론이 날 때까지 기다린 뒤 재건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시아도 이라크전의 악몽을 지적하며,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0년 전 이라크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협박이 시작됐다”며 “국제사회의 동의가 없는 외부 개입의 구체적 결과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유엔조사단의 화학무기 피해 현장 조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시리아 외무부 장관은 27일 “유엔조사단이 반군이 장악한 지역 방문을 요구했으나 반군은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며 조사가 잠시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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