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먼저 회담 제안했지만
이란 “국내사정 복잡” 이유 거절
오바마 “핵 외교적 해결” 연설에
로하니 “대화 준비 돼있다” 화답
이란 “국내사정 복잡” 이유 거절
오바마 “핵 외교적 해결” 연설에
로하니 “대화 준비 돼있다” 화답
1979년 국교 단절 이후 34년 만에 이뤄질 듯하던 미국과 이란 두 나라 정상의 만남이 결국 무산됐다. 그러나 유엔 총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관계 개선을 바라는 발언을 내놓아 이심전심을 확인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24일 오후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란은 골칫거리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서방 국가들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이란은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WMD)를 안보와 방위 차원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무기는 근본적으로 이란의 종교적, 윤리적 원칙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전 같은 연단에 선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설을 주의 깊게 경청했다”며 “미국이 전쟁 도발 압력을 넣는 세력의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따르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하니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해선 비판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는 호전성과 전쟁 도발 의지를 부추기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란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고 이란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장애물이 많겠지만 외교적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발짝 더 나아가 “미국은 이란의 정권교체를 원하지 않으며, 이란 국민이 평화로운 핵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신 이란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못박았다.
지난 6월 온건파인 로하니가 개혁파의 지지를 받아 이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과 이란은 관계 개선을 위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주고받았다. 로하니는 당선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이란은 치료해야 할 해묵은 상처가 있다”고 말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 오바마도 로하니에게 당선 축하 서한을 보냈고, 최근엔 이란이 국제사회와 협력해 (핵무기 관련) 약속을 준수한다면 경제제재를 철회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도 보냈다.
이 때문에 이번 유엔 총회에서 두 사람이 비공식적으로라도 만나리라는 기대가 높았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외신들은 24일 백악관 관리들의 말을 따서 “오바마와 로하니는 (유엔 총회 기간에) 악수를 하거나 비공식 회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란 대표단에 두 정상이 잠깐 만나자고 제안했으나 이란 쪽이 ‘지금은 국내 사정이 너무 복잡하다’며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로하니는 미국 <시엔엔>(CNN) 방송에 나와 “(오바마와 만남에 대해) 얘기가 좀 있었고 어느 정도 준비도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만큼 충분하게 만남을 조율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경파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한테서 핵 협상 권한을 위임받았느냐는 질문에 “하메네이도 국익을 위해선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로하니는 다양한 방법으로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그는 <시엔엔> 인터뷰 말미에 영어로 “나는 미국인들을 향해 이란인들이 미국인에게 보내는 평화와 우정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또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폭력과 극단주의에 맞서는 세계’(WAVE)라는 그룹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이란도 세계평화를 위해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이 15년 전 제안한 ‘문명간 대화’와 일맥상통한다.
대통령 간 회동은 불발했지만 두 나라는 여전히 대화할 기회를 남겨놓고 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26일 유럽연합(EU) 주재로 열리는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 회의에서 만날 예정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24일 “이 자리에선 최소한 지난봄 중단된 이란 핵 협상을 재개하는 날짜 정도는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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