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군 앞 탈레반에 넘어갈까 우려
장갑차·탱크는 물론 가전품도 폐기
지난해 고철 판 수익 4650만달러
장갑차·탱크는 물론 가전품도 폐기
지난해 고철 판 수익 4650만달러
2014년 말로 예정된 철군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그간 사용해 온 각종 군용장비를 폐기해 고철로 팔아넘기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7일 보도했다. 운송비용 절감과 함께 철군 이후 군용장비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다.
통신은 미 국방부의 자료를 따 “지난해 아프간 주둔 미군이 폐기 처분한 각종 장비는 무려 17만6000t에 이른다”며 “폐기과정에서 나온 고철을 아프간 업체 쪽에 넘겨 4650만달러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고 전했다. 폐기 대상이 된 군용장비에는 장갑차·탱크 등 무기류부터 트럭이나 소형 발전기, 운동기구와 사무용 가구, 에어컨 등 가전제품까지 다양하다. 미군 당국은 “이들 장비 대부분은 사용연한이 지났거나, (철군시) 운송비용이 아까울 정도로 노후한 것들”이라고 밝혔다.
아프간 쪽에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파예드 와헤디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에이피> 인터뷰에서 “아프간 군·경이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는 군용장비 폐기를 중단하라고 미군 쪽에 여러차례 요구했다”고 말했다. 남부 칸다하르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무함마드 카심도 “떠나는 마당에 주민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까지 다 망가뜨려 고철로 떠넘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열을 올렸다.
그럼에도 미군이 굳이 장비를 폐기하는 이유는 철군 이후 이들 장비를 탈레반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군 당국자는 “러닝머신이나 가전제품에도 타이머와 구리선이 있다. 이를 이용해 사제폭탄을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미군은 지난해 9월부터 병력과 장비 철수작업을 시작했다. 13년 넘게 주둔해 온 터라, 철수시켜야 할 차량만도 5만대에 이를 정도로 ‘짐’이 많다. 통신은 “폐기 대상이 아닌 각종 군용장비는 10만개의 컨테이너(20피트 기준)에 실어 옮길 예정”이라며 “이를 한 줄로 세우면, 길이가 600km에 이를 정도”라고 전했다. 2001년 10월 아프간 침공 이래 미군이 이 나라에 배치한 군사장비 총액은 약 330억달러에 이른단다.
지난 2011년 말 이라크 철군 당시에도 미군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엔 물탱크며, 발전기, 각종 사무용 가구와 장갑차 등 모두 1억달러 상당의 군용장비를 이라크 쪽에 무상으로 기증하거나 헐값에 넘겼다. 미군 당국자는 “이라크 군·경은 치안을 떠맡을 준비가 된 상태였고, 장비를 운용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며 “아프간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월 다국적치안유지군(ISAF)한테서 치안권을 완전히 넘겨 받은 아프간 군·경은 올해 내내 탈레반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10월 말 아프간 내무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자살폭탄공격 50차례를 포함해 올해 탈레반이 벌인 크고작은 유혈사태는 모두 6604차례에 이른다. 이로 인해 모두 2052명의 아프간 군·경이 목숨을 잃었고, 5000여명이 다쳤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