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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오빠는 내가 죽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어요”

등록 2014-01-14 16:30수정 2014-01-14 21:21

‘자살폭탄 조끼’ 9살 아프간 소녀 스포즈마이
새엄마와 의붓형제들에게 “노예처럼” 학대 받아
폭탄조끼 받은 날도 탈레반 오빠에게 폭행 당해
“죽었으면 죽었지,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을래요”

“오빠는 검문소 사람들 앞에서 폭탄 조끼를 작동시키면 그 사람들이 죽겠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는 그게 자살폭탄 조끼이고 나 또한 죽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최근 탈레반의 자살폭탄 도구로 희생될 뻔 했던 소녀 스포즈마이(9)가 춥고 무서웠던 그날 밤의 이야기를 13일 영국 <비비시>(BBC)의 국제뉴스 프로그램 ‘뉴스데이’에 털어놨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의 검문소 인근에서 폭탄 조끼를 입은 채 발견됐으며, 자신의 오빠한테 조끼를 작동시키란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오빠 가운데 한 명인 자히르는 현지에서 이름난 탈레반 사령관이다. (▷ 관련기사 : 어린 소녀들에게까지 ‘자살폭탄 조끼’…비극의 아프간)

스포즈마이는 새엄마와 의붓형제들과 함께 지내며 집에서 학대받던 소녀였다.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글자 하나도 배우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집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을 하루종일 “노예처럼” 강요받았다. 폭탄조끼를 건네 받은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기도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때 그의 오빠가 스포즈마이를 밖으로 불러냈다. 폭탄 조끼를 건네면서 작동법을 알려줬다. 스포즈마이는 “내가 무서워 하자 오빠가 조끼를 가져간 다음에 심하게 때렸다”면서 “그리고 나서 오빠가 조끼를 다시 주고 나를 검문소 가까이에 놔두고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검문소 인근에서 공포와 추위에 떨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검문소 사람이 소녀를 발견해 구금됐다.

스포즈마이는 오빠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는 이 세상에 왔으면 언젠가는 죽게 된다. 너는 다른 무언가를 배우거나 하려고 세상에 온 게 아니야. 네가 하는 말이 영향력을 가질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돼. 너는 단지 죽기 위해서, 너의 신성한 의무를 다 하기 위해서 태어났을 뿐이야” 그는 자신을 이처럼 윽박질렀던 오빠에 대해 “다 큰 어른이고, 수염이 있다”면서 “오빠 나이는 모른다”고 말했다.

스포즈마이는 현재 정부의 보호 아래 헬만드주의 주도인 라슈카르가에 있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 검문소 책임자한테 사정 얘기를 했을 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길래 집에 가면 나를 때릴 거라서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스포즈마이 사건이 공개된 뒤 소녀의 아버지 압둘이 가족들과 함께 탈레반한테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겠다면서 딸을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스포즈마이는 “죽었으면 죽었지,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명령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소녀는 자폭 조끼 명령을 내린 것은 오빠지만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프간 정부는 소녀가 속한 부족 원로들이 소녀의 안전을 보장할 경우에만 귀가를 허락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소녀는 “오빠들이 이번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시킬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나를 좋은 곳에 보내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해서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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