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마다 친군부 유권자 몰려
반대 시위도 격렬…첫날 11명 숨져
철권 탄압 “무바라크 때보다 심해”
‘개헌 통과→군부통치’ 전망 커져
반대 시위도 격렬…첫날 11명 숨져
철권 탄압 “무바라크 때보다 심해”
‘개헌 통과→군부통치’ 전망 커져
2011년 1월25일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3년여, 이집트에서 혁명 이후 세번째 개헌 국민투표가 15일 오후 마무리됐다.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마감 72시간 안에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한다. 하지만 투표 개시 전에도 후에도 개헌안 통과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번 투표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보인다.
투표 첫날인 14일 이집트에서 들려온 소식은 혼란스럽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투표장마다 줄을 늘어선 친군부 성향의 유권자들이 국가를 부르며, 압둘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의 사진에 입을 맞췄다”고 전했다. 투표를 앞두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뜻을 내비친 시시 장관은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린 지난해 7월3일 쿠데타를 주도했다.
“조국과 시시 장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찬성표를 던졌다.” <뉴욕 타임스>는 카이로 나스르시티에서 투표를 한 나디아 사예드(64)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투표장에선 “시시 장관은 우리의 대통령”이란 구호가 울려퍼졌다. 신문은 “마치 애국자 선발대회라도 열린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에선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곳곳에서 200~300명씩 뭉친 반군부 시위대가 진압 경찰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집트 보건부는 14일 하루에만 시위 도중 11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날 투표소 개장에 앞서 카이로 임바바 지역의 법원 청사 부근에서 폭발 사건이 벌어졌지만,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이집트 전역의 투표소에 군경이 40만명이나 배치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무르시 정권 붕괴 이후 7개월여 동안 줄잡아 1000여명이 반군부 시위 도중 목숨을 잃었다. 무슬림형제단은 테러단체로 지정됐고, 지도부는 투옥됐고, 자산은 동결됐고, 회원 가입은 범죄가 됐다.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인 언론사는 폐쇄됐다. 무바라크뿐 아니라 무르시 정권 퇴진운동까지 주도한 시민운동가와 언론인들도 줄줄이 체포·투옥됐다.
2012년 12월 무르시 정권이 주도한 개헌 투표는 32.8%의 참여 속에 63.8%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당시만 해도 반이슬람주의 정치세력과 사법부, 정부 고위 인사들과 절대다수 언론까지 나서 개헌안에 비난을 퍼부었다. 종교적 잣대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새 헌법안에 따르면, 종교에 기반을 둔 정당은 활동이 금지된다. 무슬림형제단을 기반으로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자유정의당은 이미 해산됐다. 군은 앞으로 8년 동안 국방장관을 직접 지명하게 된다. 민간인을 군사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다. 내무부에 딸린 경찰위원회는 경찰 관련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개혁’은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개헌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철저히 가로막혔다. 기성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군부 주도 개헌안 반대운동을 벌인 ‘강한 이집트당’은 12일 포스터를 붙이고 선전물을 나눠주던 당원 10여명이 체포된 직후 ‘선거 보이콧’을 선언하고 활동을 접었다. 인권운동가 호삼 바흐가트는 <뉴욕 타임스>에 “무바라크 독재가 극에 달했을 때보다 더욱 심각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 이집트에서 군부가 정국을 주도하지 않은 시기는 무르시 정권이 집권한 13개월여뿐이다.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지 불과 3년 만에, 이집트가 다시 군부통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5일 인터넷판에서 “이집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반납했다”고 표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