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 이슬람…종교자유는 보장
남녀 평등·재판받을 권리 명시
아랍국가 중 가장 민주적 헌법
“이슬람 정체성-근대성 사이 타협”
‘승자독식’ 이집트의 혼란과 대조적
남녀 평등·재판받을 권리 명시
아랍국가 중 가장 민주적 헌법
“이슬람 정체성-근대성 사이 타협”
‘승자독식’ 이집트의 혼란과 대조적
‘아랍의 봄’ 발상지인 튀니지가 드디어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다. 남녀평등,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 헌법이 26일 의회에서 통과됐다. 2011년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3년 만이다.
새 헌법은 튀니지의 국교가 이슬람이라고 명시했지만 다른 종교와 무신론도 허용하는 등 종교 선택의 자유를 보장했다. 고문 금지,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도 명시됐다. 무엇보다 법 앞에서 남녀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7일 이는 아랍 국가들 가운데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며 “이슬람 정체성과 근대성 사이의 타협”이라고 평가했다. 튀니지의 한 여성 인권운동가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오늘 이 헌법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논쟁하고 숙고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이 진정한 혁명이다”라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2010년 12월 경찰의 폭력적인 단속에 항의한 대학생 노점상의 분신으로 촉발된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는 한달도 채 못돼 벤 알리의 23년 독재정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2011년 10월 총선에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당이 승리해 연립정부를 구성했으나 서구식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이 고조됐다. 강경 이슬람주의 살라피스트들이 득세하며 세속주의자들을 공격했다. 2012년 8월엔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는 헌법 초안이 발표되자 수도 튀니스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정치적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세를 불렸다. 반면 엔나흐다당은 높은 실업, 치솟는 물가 등 경제적 위기를 관리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2월과 7월 야당의 유력 인사들이 잇따라 암살되자 정권 퇴진 목소리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엔나흐다당은 민심을 수용해야 했다. 지난해 9월 정부 사퇴를 발표했고 이어 중립적인 과도정부가 구성됐다.
새 헌법은 의원들의 숱한 조정과 타협을 거쳐 쓰여졌다. 투표 이틀 전인 24일, 의석 40%를 점한 엔나흐다당이 헌법에서 이슬람 율법을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등 많은 양보를 해 헌법 개정안이 완성됐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27일 전했다. 새 헌법은 의회에서 전체 216표 중 찬성 200표를 얻어 통과됐다. 튀니지는 올해 안에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반면 2011년 ‘아랍의 봄’을 함께 겪은 이집트에선 군부의 권력 장악이 가속화 되고 있다.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는 27일 압둘파타흐 시시 국방장관의 대선 출마를 승인했다. 시시 장관은 ‘아랍의 봄’ 이후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자유정의당)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앞장 선 인물이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날 “몇시간 내에” 시시 장관이 공식적으로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아들리 만수르 과도정부 대통령은 시시 장관을 군 최고 계급인 원수로 승진시켰다. 외신들은 대선후보 출마를 위해 군부에서 물러날 시시 장관에게 주는 ‘마지막 훈장’으로 분석했다.
이집트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킨 시시 장관의 대중적 인기가 올라가자, 애초 정한 투표 일정을 바꿔 대선을 총선보다 먼저 치르기로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4월말께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권력을 장악하려는 군부의 계획이 착착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집트에선 ‘아랍의 봄’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독주, 뒤이은 군부 쿠데타 등으로 정정불안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시 장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정치적 위기를 끝내주길 바라는 여론이 강하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이번 대선이 ‘혁명 전 독재 체제로의 회귀’가 될까 두려워 하고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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