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나자 ‘난민캠프 가라’ 명령
‘치안 위기’ 내걸고 보복성 조처
독립때 소말리아 편입 원했으나
케냐 반대로 400만명 난민 신세
“경찰서 300m 불구 항상 불안”
‘치안 위기’ 내걸고 보복성 조처
독립때 소말리아 편입 원했으나
케냐 반대로 400만명 난민 신세
“경찰서 300m 불구 항상 불안”
케냐 정부가 26일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난민과 불법이주민에게 난민캠프로 옮겨갈 것을 명령했다. 또 대형 난민캠프인 ‘다다브 수용소’와 ‘카쿠마 수용소’ 밖에서 난민을 발견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도록 했다. 사흘 전 뭄바사에서 벌어진 무장괴한의 교회 습격 사건에 대한 대책이다.
소말리아와 케냐 접경지역에 있는 다다브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난민수용소로 이미 포화 상태다. 스와힐리어로 ‘어디도 아닌 곳(nowhere)’을 뜻하는 카쿠마는 사막에 몰아치는 모래폭풍, 전염병과 영양부족 등으로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케냐 정부는 난민들에게 캠프 귀환 명령을 내린 것은 치안 위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케냐에 살고 있는 소말리 난민들을 겨눈 보복성 조처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3일 케냐 남동쪽 해안도시인 뭄바사 시내의 한 교회에 두명의 괴한이 침입해 예배 중이던 신자들에게 총을 난사해 6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쳤다. 생후 18달된 아기를 품에 안고 지키려고 했던 한 여성은 즉사했고, 아기는 머리에 총탄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괴한들이 외국어를 썼다는 점에 비춰 케냐인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최근 케냐에서 크고작은 테러를 일으켜온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바브 소속 대원들이 지목되고 있다. 교회 습격 며칠 전 케냐 검찰은 폭탄이 들어 있는 차량을 적발한 뒤 두명의 소말리아인들을 테러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이런 테러가 벌어질 때마다 고통받는 이들은 케냐에 살고 있는 약 400만명의 소말리인들이다. ‘북부전선지대’라고 불렸던 케냐의 북동부 지역은 소말리족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케냐가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소말리아에 편입되기를 희망했으나 케냐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케냐 정부군이 소말리인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가리사 학살(1980년) 같은 사건이 이어지며 양쪽의 갈등은 지금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
갈등은 폭력의 악순환을 낳았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샤바브가 케냐인들에 대한 소말리인들의 적대감을 활용해 세를 불렸으며, 케냐인들은 알샤바브를 이유로 소말리인들을 괴롭혔다. 2012년 10월 소말리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나이로비의 상업지구 이스틀리에서 미니버스 폭탄테러가 일어나자, 케냐인들은 보복으로 소말리인들의 주택·상점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했다.
지난해 방영된 <알자지라>의 다큐멘터리 ‘아직 케냐인이 아니야’(Not Yet Kenyan)에서 케냐 북동부에 살고 있는 한 소말리인은 “경찰서가 집에서 300m 거리인데도 우리는 매우 불안하다. 사람들을 죽이는 게 마치 닭을 잡는 것처럼 다반사다. 내일도 목숨이 붙어 있다면 그저 신에게 감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케냐 군·경찰은 알샤바브 진압을 명분 삼아 폭력을 일삼고 소말리인들의 집에서 휴대전화·컴퓨터 같은 귀중품을 멋대로 가져가기도 한다.
난민들을 캠프로 보내는 것은 케냐 정부에도 경제적으로는 손해다. 소말리-미국평화위원회(SAPC) 의 무함마드 알리 하산 대표는 “케냐의 소말리인들은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상업활동을 통해 케냐 경제를 부양하고 있다”며 “케냐 정부가 치안을 우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죽이겠다며 자기 목숨을 끊는 일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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