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9·11 테러 주도
미 아프간 침공으로 조직 분산
ISIL 세력 확장하며
알카에다 정통성 정면도전
막강한 경제력 갖춰 최강자 부상
미 아프간 침공으로 조직 분산
ISIL 세력 확장하며
알카에다 정통성 정면도전
막강한 경제력 갖춰 최강자 부상
이라크의 위기는 전세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판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알카에다의 쇠락과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이하 이슬람국가)의 부상 등으로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토착화, 다변화하는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고 있다.
2001년 9·11테러를 전후해 초국적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상징은 알카에다였다. 알카에다는 이슬람권에서 국경을 초월한 무장투쟁을 조직하고, 이론적·실천적 지도력을 발휘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알카에다 중앙조직은 위축됐으나, 이슬람권 각지의 주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은 알카에다 지부로 변모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의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마그레브 알카에다, 시리아와 레바논의 알누스라전선 등이 대표적이다.
알카에다의 정통성은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가 부상하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는 요르단 출신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라크에서 조직한 ‘유일신과 성전’(알타위드 왈 지하드)이 모태이며, 이라크 내전 국면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했다. 자르카위의 조직은 2004년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2006년 자르카위가 미군 공습으로 사망하고, 시리아·이라크의 여러 이슬람주의 단체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알카에다의 자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르카위의 뒤를 이어 이 단체의 지도자가 된 이라크 출신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2013년 4월 이슬람국가 창설을 발표하면서 시리아의 알카에다 지부인 알누스라전선도 통합했다고 밝혔다. 알누스라전선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이 분규를 조정하러 나섰지만, 올해 2월 이슬람국가는 알카에다 조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슬람주의 무장단체가 알카에다와 공식적으로 등을 돌린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의 갈등은 시리아와 이라크라는 ‘황금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자, 두 단체의 이데올로기와 전략·전술 차이도 원인이었다. 이슬람국가의 극렬성과 과격함이 알카에다조차도 포용하기 힘든 지경까지 간 것이다.
두 단체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의 철저한 시행을 주장하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이슬람국가는 훨씬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현재 이슬람국가는 점령 지역에서 음악 등 모든 세속적 관행 금지는 물론이고, 시아파 민간인까지 학살하고 있다. 알카에다도 시아파를 반대하기는 하지만, 시아파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데는 반대한다. 이슬람국가는 최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급격하게 세력을 확산하면서, 알카에다의 정통성에도 정면 도전하고 있다.
국제 이슬람주의 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의 국경을 뛰어넘어 이슬람주의 율법으로 통치하는 초국적인 이슬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건설된 초기 칼리프 국가의 재건을 뜻한다. 알카에다는 국제적 네트워크 운동에 그쳤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집권했다. 이에 견줘 이슬람국가는 중동의 핵심 지역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이슬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를 내걸고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버락 멘델손 미국 하버포드대 교수는 최근 <포린 어페어즈>에 실은 ‘이라크에서의 부수적 피해’라는 기고에서, 이라크 위기가 이슬람국의 부상과 알카에다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슬람국가는 보유 자원 면에서도 역대 최강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라크 제2도시 모술에 있는 중앙은행을 장악해 약 5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했고, 유전 지대를 장악하며 막강한 경제력을 갖췄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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