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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오늘도 공습·봉쇄…끝없는 절망의 땅 ‘가자’

등록 2014-07-14 20:14수정 2014-07-14 22:41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알바트슈 집안 사람들의 합동 장례식이 열린 14일 가자시티에서 친지와 주민들이 희생자의 주검을 들것으로 옮기고 있다. 전날 공습으로 어린이 6명과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3명 등 18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가자시티/A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알바트슈 집안 사람들의 합동 장례식이 열린 14일 가자시티에서 친지와 주민들이 희생자의 주검을 들것으로 옮기고 있다. 전날 공습으로 어린이 6명과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3명 등 18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가자시티/AP 연합뉴스
이스라엘 2005년에 철군했지만
물·전기·식량·국경까지 모두 장악
‘비타협적 투쟁’ 하마스 문제삼아
시도때도 없는 공습…항구적 전쟁

6일간 168명 사망·1140명 부상
1만6천명 ‘피난’ 3만여명 물끊겨
‘점진적 인종학살.’

일란 파페 영국 엑시터대학교 교수(역사)는 13일 인터넷 대안매체 <일렉트로닉 인티파다>에 올린 기고문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스라엘 태생인 그가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2006년 12월이다. 당시 파페 교수는 “이스라엘군의 공세로 인한 팔레스타인 인명 피해는 2000년 이후로만 따져 사망 4000여명, 부상 2만2000여명에 이른다”며 “이는 점진적으로 팔레스타인 인구를 말살하려는 의도”라고 질타한 바 있다. 파페 교수는 13일 기고문에서 “가자지구의 현실은 8년 전과 전혀 바뀐 게 없다”고 탄식했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 또 다시 폭탄이 비처럼 쏟아진다. 이슬람주의 정치단체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뿌리 뽑겠다며 지난 7일 본격 공습에 나선 이래, 이스라엘군에게 가자지구 주민 약 180만명은 무차별 폭격을 해도 될 ‘인간방패’일 뿐이다. 끝도 없는 봉쇄와 전쟁의 땅, 가자의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군사 점령한 것은 1967년 6월 벌어진 이른바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이후다.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8000여명에 불과한 유대인 ‘정착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가자지구에 대규모 지상군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면 철군을 단행한 것은 아리엘 샤론 총리 정부 시절인 2005년 9월이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앞서 진행될 ‘국경 획정’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었다.

철군 이후에도 가자의 현실은 별반 달라질 게 없었다. 그리로 통하는 땅·바다·하늘 길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장악한 터였다. 사람의 들고 남은 물론, 돈·물·전기·식량·연료·의약품 등까지 모두 이스라엘이 ‘밸브’를 틀어쥐고 있었다. ‘점령’은 끝나지 않았다.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에서 하마스가 132석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어선 74석을 따내며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를 모태로 1987년 가자지구에서 설립된 하마스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 됐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맞선 비타협적 투쟁을 강조해왔다. 선거 직후, 이스라엘은 가자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무력시위를 벌였다. 미국와 유럽연합도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의 집권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에 지원해 온 각종 원조를 동결했다. 하마스 쪽이 독자정부 출범 1년만인 2007년 2월 파타와 거국정부 구성에 합의한 이유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은 파타 쪽은 하마스의 정국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두 진영 사이에서 사소한 총질이 오가더니, 2007년 6월 가자지구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대통령은 즉각 거국정부를 해산하고, 파타 주도의 비상내각을 출범시켰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기다렸다는 듯 원조를 재개했다. 이스라엘도 동결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세금과 관세 수입 약 5억달러를 풀어줬다. 하마스와 가자는 그렇게 ‘섬’이 됐다.

봉쇄 이후 가자지구는 사실상 전쟁터다. 360㎢의 면적에 180만명이 몰려사는 높은 인구밀도에, 공식 실업률은 30~50%를 넘나든다. 삶이 곧 전쟁이다. 봉쇄 이후 이스라엘은 시도 때도 없이 가자지구를 때려댔다. 2008년 2월 말 작전명 ‘뜨거운 겨울’을 시작으로, 2008년 12월~2009년 1월의 전면 침공과 2012년 3월·4월·11월의 대대적인 공습에 이르기까지 ‘저강도 전쟁’이 지속돼왔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자와 외부세계를 연결해주던 국경지역의 ‘땅굴’이었다. 이스라엘의 집요한 공격이 집중된 것은 당연했다. 2013년 7월엔 든든한 우군이던 이집트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마지막 남은 숨통이던 라파-시나이반도 출입도 막혔다. 지난해 8월부터 경찰 등 가자지구 공무원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마스가 지난 4월 파타와 거국정부 구성에 합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7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도 가자지구는 빈사 상태였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HCA)이 13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공습한 이후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168명이다. 이 가운데 어린이 36명을 포함해 모두 133명이 민간인이다. 또 어린이 296명과 여성 233명을 포함해 모두 1140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반파 또는 완파된 집이 940채, 모두 5600여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공습을 피해 피난길에 나선 이들은 1만6000여명, 4만8000명 가량은 ‘창이 깨지고 문이 부서진 집’에서 버티고 있다.

베이트하눈, 가자시티, 칸유니스 등의 7개 상수도관이 파괴되면서 3만1000명에게 물공급이 중단됐다. 가자시티의 알몬타르 정수장도 폭격을 당했다. 유엔 쪽은 “이번 공습으로 인해 상하수도 시설이 파괴로 긴급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39만50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극의 땅, 가자의 현실이다. 공습은 오늘도 계속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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