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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5살 카심 덮친 미사일…피로 물든 ‘가자’

등록 2014-07-21 20:15수정 2014-07-22 11:33

19일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에 실려온 5살짜리 소년 카심이 얼굴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카심의 아버지는 숨졌고, 어머니와 누나는 부상을 당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19일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에 실려온 5살짜리 소년 카심이 얼굴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카심의 아버지는 숨졌고, 어머니와 누나는 부상을 당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르포 울부짖는 가자

이스라엘, 팔 샤자이야 밤샘 포격
흙먼지속 주검·피투성이 부상자…
가족 잃은 슬픔에 혼절·분노 가득
약품 동난 병원에선 봉합 수술만
“하룻새 70명 숨져…아이가 17명”
공포의 밤이 지났다.

19일 밤(현지시각)부터 20일 새벽까지 이스라엘군의 전투기 소음과 미사일이 발사되는 소리, 함포, 포격 등 폭발음이 밤새도록 쉬지 않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뒤흔들었다. 20일 날이 밝자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에는 주검들과 피투성이 부상자를 싣고 들어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구급차에서 부상자를 실은 들것이 내려질 때마다 피가 흥건하다. 사상자의 몸에선 피와 함께 건물의 파편 조각까지 잔뜩 묻어나온다. 시파병원 응급실은 이미 포화상태다. 딱히 어디가 응급실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실려오는 순서대로 사망자와 부상자를 분리하고 복도에서까지 급한 환자들을 우선 치료하기 시작한다. 약품은 동이 났고, 찢어진 상처를 긴급히 봉합하는 수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가족들은 병원 밖에 모여 내 피붙이가 죽지만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구급차 소리와 사람들의 한숨 소리만 무거운 침묵을 깰 뿐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의 거리에 19일 이스라엘군이 쏜 포탄이 터지지 않은 채 거리에 방치돼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의 거리에 19일 이스라엘군이 쏜 포탄이 터지지 않은 채 거리에 방치돼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전날 피투성이로 실려온 5살 소년 카심의 가족은 내가 목격해야 할 처참한 행렬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카심은 이미 숨이 끊어진 아버지, 그리고 부상을 입은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병원에 실려 왔었다. 카심 가족이 살고 있던 가자지구 북서부의 아파트는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무너져 내렸다. 20일 시파병원에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어린 소년의 주검, 흙먼지로 온몸이 뒤덮인 소녀의 주검, 피범벅 된 채 고통에 울부짖는 어린 소년들이 잇따라 실려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민간인들의 주택에 숨어 있다고 주장하며 마을과 아파트까지 무차별로 공격했다. 하마스와 상관없는 민간인 가족들이 봉변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스라엘군의 발표는 무색해 보였다. 가자지구의 택시운전사 마흐무드는 “이스라엘은 이미 오랫동안 가자를 봉쇄하고 민간인을 무차별 폭격해왔다. 가자지역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친구나 가족을 잃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라며 “이스라엘도 똑같이 당해봐야 이런 기분을 이해할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하룻밤 사이에 70명 이상이 숨진 팔레스타인 가자시티 동부 샤자이야 지역에서 화상을 비롯해 큰 부상을 입은 소년이 20일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으로 실려오고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하룻밤 사이에 70명 이상이 숨진 팔레스타인 가자시티 동부 샤자이야 지역에서 화상을 비롯해 큰 부상을 입은 소년이 20일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으로 실려오고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샤자이야 지역 등 곳곳에서 온 사상자들이 시파병원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시파병원은 가자에서 가장 큰 의료시설이다. 이스라엘군은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거의 5초 간격으로 샤자이야에 포격을 퍼부었다. 가자 보건부 장관은 샤자이야에서만 적어도 70명이 살해당했으며, 희생자에는 어린이 17명, 여성 14명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지난 8일 군사작전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지 열사흘째 날에 최악의 사상자를 내며 ‘피의 일요일’로 기록되게 됐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를 “학살”이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14일째 계속되면서 21일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이미 500명을 넘었다. 20일 주검과 부상자를 빼내기 위해 잠시 합의된 전투 중단 기간 동안 주검은 계속 실려왔다. 많은 주검에선 심한 탄내가 났고, 일부는 팔다리가 없는 채였다.

참혹한 사상자 밀려드는 동안에도 폭격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이는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자신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부상자는 구급차에 급히 실려오느라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병원 안팎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고 그 와중에도 이스라엘의 폭격은 계속되었다. 시파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노르웨이인 의사 길버트는 “자정 무렵부터 무너진 건물에 깔린 사람들을 구해달라며 앰뷸런스를 요청하는 전화가 병원에 쇄도했는데, 앰뷸런스가 턱없이 부족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2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동부 샤자이야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 당한 여성이 울부짖으며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2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동부 샤자이야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 당한 여성이 울부짖으며 가자시티의 시파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시체안치소 또한 시신을 확인하고 인도받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적였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의 주검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혼절하고, 어떤 이는 주검의 얼굴을 감싸 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묘지로 가기 위해 주검을 차에 실으면서도 주검을 싼 하얀 비닐을 어루만지는 가족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의 아비규환은 폭격 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자지구 전체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이스라엘이 최악의 대규모 공습을 벌인 19일 밤 이후 폭격을 피해 임시 대피시설로 향하는 난민들도 급격히 늘었다. 특히 이스라엘 국경과 가까운 동부가 집중적으로 폭격을 당했기 때문에 걸어서 피난길에 나선 동부 지역 주민들이 가자 시내로 계속 밀려들고 있다. 걸어서 가자시티까지 도착한 이들은 구호단체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가자 시내의 학교 건물 곳곳에 설치된 대피소로 향했다. 차 지붕에 매트리스를 얹고 온갖 가재도구를 챙겨서 피난 오는 가족들의 행렬도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삼엄한 감옥이라고 불리던 가자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의 현장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다치고 있지만, 언제 이런 고통이 끝날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가자지구/김상훈 강원대

김상훈 교수는

지난 1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들어가 취재하고 있는 사진작가 김상훈 강원대 교수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보내왔다. 김 교수는 서울과학기술대와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2003년부터 프랑스에 본사를 둔 뉴스사진 전문 에이전시인 시파프레스 소속으로 취재를 하고 있다. 강원대 멀티디자인학과에서는 사진과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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