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중재 미 ‘곤혹’ 속내 드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중재자를 자처했던 미국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미국 대중동 정책의 귀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은 미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케리 장관은 20일(현지시각) <폭스 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대기하는 동안 측근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독한 정밀조준 작전”이라는 말을 두차례나 했다. <폭스 뉴스>는 이 전화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방송으로 내보냈다. 그러면서 케리 장관에게 ‘이스라엘이 너무 지나치게 나가 당혹스러운 것이냐’고 묻자, 그는 어느 누구라도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살상당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대꾸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견해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에서 케리 장관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지난주 이집트가 제안한 정전안을 거부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한다는 기존 태도를 반복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 케리 장관을 다시 중동에 파견해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제위기그룹의 네이선 스롤 수석연구원은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올해 4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하마스와 통합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으며, 하마스는 이 통합정부에 가자지구 행정권을 넘기기로 했다”며 “이는 하마스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조처였으나 팔레스타인의 통합을 우려하는 이스라엘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이 통합정부의 이행을 방해했다”며 “이번 사태는 그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시사잡지 <네이션>은 “폭탄과 미사일이 가자 시민들에게 쏟아지는 와중에도 백악관과 미국 외교관들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반복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충격적이고 수치스럽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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