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선 폭발음으로 이스라엘의 공습을 느낀다. 지난밤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곳곳은 공습의 폭음으로 요란했다. 몇 발의 폭탄은 가자시티 중심가에 위치한 고층 빌딩을 덮쳤다.
날이 밝자 드러난 폭격 현장은 참혹했다. 10층 건물의 절반이 위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5층과 6층 사이에 눌린 주검은 몸의 절반을 건물 바깥으로 드러낸 채 매달려 있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이 건물에서만 12명이 사망했고, 12명이 다쳤다. 사망자 대부분은 독일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 이브라힘 킬라니(53)의 일가족이었다.
킬라니는 독일에 유학해 공학을 전공하고, 고향인 가자지구 북부의 이스라엘 접경도시 베이트 라히야로 돌아와 엔지니어로 일했다. 지난 8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뒤 4일째 되는 날, 가자지구 북부에 쏟아지는 맹렬한 폭격을 피해 그는 온 가족을 데리고 부인의 고향인 가자지구 동부 샤자이야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이번엔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샤자이야를 노리기 시작했다. 킬라니 가족은 좀더 안전한 곳을 찾아 지난 19일, 가자시티 중심가에 있는 이 고층 아파트를 임대해 피난처로 삼았다. 그가 샤자이야를 떠난 바로 그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샤자이야에서만 70명 넘게 숨졌다. 이날 하루에만 가자지구에서 149명이 목숨을 잃었다. 킬라니는 다행히 ‘피의 일요일’을 피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킬라니는 샤자이야를 떠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22일 새벽 1시 반, 아무런 경고도 없이 아파트에 폭탄이 날아들었다. 킬라니와 그의 부인, 그리고 3명의 딸과 2명의 아들, 그리고 4명의 친척이 몰살당했다.
폭격을 맞은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유리 파편과 콘크리트 조각만이 아니었다. 구조대가 주검을 수습하기 위해 12시간이나 건물을 뒤졌지만 정작 주검의 일부가 발견된 곳은 건너편 건물의 주차장과 잎이 무성한 가로수 위였다. 팔 한쪽, 다리 한쪽, 그리고 살점들이 건물이 폭발하면서 수십m를 날아가 건너편 건물과 가로수 위로 떨어진 것이다. 팔과 다리 조각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떨어져 나간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과 부서진 이빨이 뒤섞여 있어, 어떤 것이 이빨이고 어떤 것이 콘크리트 조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조각도 발견되었다. 건물 주변 이곳저곳에서 주검 조각들이 수습될 때마다 사람들은 “알라 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이스라엘의 만행에 분노했다.
현장에서 만난 소방대원 마흐무드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뒤 폭격 현장에 출동하는 일이 끊이질 않아 48시간 동안 잠도 거의 못자고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폭발 현장 대부분이 건물 전체가 무너진 곳이어서 주검을 수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어른의 사지가 찢어진 경우는 그나마 수습할 수 있지만, 어린이의 경우에는 너무 잘게 찢겨 사체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킬라니 일가족의 장례식에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김상훈 강원대 교수·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