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압력 받던 말리키 전 총리
새 총리 지명에도 “자리 지킬것”
새 총리 지명에도 “자리 지킬것”
차기 총리가 지명됐음에도 누리 말리키 현 총리가 선선히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이라크 정국이 격랑으로 빨려들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의 자중지란은 갈수록 심해지는 모양새다.
말리키 총리는 11일 밤 국영방송에 출연해 하이데르 아바디 전 의회 부의장이 새 총리로 지명된 것에 대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지자들을 향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기 바란다. (새 총리 지명은) 의미없는 일일 뿐이며, 우리는 제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리키 총리는 지난 6월 초 이슬람국가 무장세력이 제2도시인 북부 모술을 장악한 직후부터 사임 압력에 시달려왔다. 특히 이라크 정부군이 사실상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도망치기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 통수권자로서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그가 3연임을 밀어붙인 것은 자신이 이끈 ‘법치국가연합’이 지난 4월 말 총선에서 제1당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위인 후세인 말리키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새 총리 지명과정 자체가 헌법 위반이다. 조용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법원에서 적법성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푸아드 마숨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아바디 전 부의장을 새 총리로 지명하고, 차기 내각 구성권을 부여했다. 말리키 총리와 같은 이슬람다와당 소속인 아바디 총리 지명자는 “(이슬람국가의) 야만적인 테러행위에 맞서 싸우기 위해 단합해야 한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새 정부 구성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쪽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일 휴가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마숨 대통령의 새 총리 지명은 포용적인 정부 구성의 전망을 밝게 하는 조처”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이라크 헌법에 따라 이라크의 서로 다른 공동체들을 단합시킬 수 있는 새 정부를 조속히 구성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도 이날 마숨 대통령과 아바디 지명자에게 전화를 걸어 새 정부가 구성되면, 미국의 군사지원이 신속히 확대될 것임을 밝혔다고 <로이터> 등은 전했다.
이라크 헌법에 따라, 아바디 총리 지명자는 향후 30일 안에 차기 내각 구성을 마쳐야 한다. 이 기간 동안 말리키는 총리직을 유지한다. 외교·안보 전문업체 ‘스트랫포’의 중동전문가 캄란 보하리는 12일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말리키는 공식적으로 누가 총리가 되든, 차기 정부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들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위험부담을 안고라도 (무력동원 등) 정치적 도박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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