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출신 귀화인 마흐모드가 아내, 다섯 명의 딸과 인천 송도의 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친척들을 두고 온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시작된 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정용일 기자
가자지구의 가족 연락 닿지 않아 애타는
마흐모드 등 팔레스타인 출신 사람들
“팔레스타인 이해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필요한 일”
마흐모드 등 팔레스타인 출신 사람들
“팔레스타인 이해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필요한 일”

언젠가 아버지는 말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자는/ 온 천하에 제 무덤도 못 가진다./ 그리고 나더러 떠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팔레스타인 민족시인 마무드 다르위시 ‘나의 아버지’ 중에서 “오늘밤 죽을 수도 있다”며 소녀가 두려움에 떤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아이들이 울부짖고, 대답 없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아비가 절규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비참을 보며 한국 인천의 하늘 아래서 함께 눈물짓는 이들도 있다. 야스민(14), 루바(12), 리나(10), 디마(6), 타라(4). 운이 좋지 않았다면, 별처럼 반짝이는 다섯 명의 딸들도 가자지구의 벽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형벌 같은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스크카니 마흐모드(43)는 적어도 지금 자신의 아이들이 그 천형을 피한 것에 안도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 땅 지난해 4월, 마흐모드는 한국인이 됐다. 요르단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요르단과 한국을 오가며 살았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되기까지, 그는 자신의 ‘국적’으로 표기된 나라에 발을 들여본 일조차 없다. 아버지의 고향이 있는 팔레스타인이 그의 나라였다.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에 뿌리 뽑힌 망명자가 입국하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불허되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가자 북쪽의 ‘알리드’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부유하진 않아도, 부족함도 없었다. 유대계 이주민들과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아직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양들의 목에 달린 방울이 딸랑이는 소리가 쿵쾅거리는 장갑차 소리로 대체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그해 4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군대는 유명한 피의 숙청인 ‘데이르야신 학살’을 저질렀다. 마흐모드의 가족은 알리드를 떠나 가자로 향했다. “한두 달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대요. 그런데 20년을 살게 되었지요.” 마흐모드의 세 형이 가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가자에서도 그들은 뿌리내릴 수 없었다. ‘분할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 통치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 80% 이상이 수십 년 동안 ‘디아스포라’로 떠돌게 될 운명에 처했다. 1967년 6월 벌어진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의 3차 중동전쟁은 엿새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마흐모드의 가족도 다른 팔레스타인 난민들처럼, 난민에 비교적 우호적인 요르단행을 택했다. 땅도 집도 없이 새로 시작한 삶은 녹록지 않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마흐모드가 태어났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았다. 일찌감치 한국 자동차 부품과 중고차 무역의 가능성을 알아본 덕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한국에 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에는 아직 친지들이 있다. 할아버지 형제의 자녀들이다. “한국식으로는 육촌이에요.” 마흐모드가 설명했다. 일가족이 요르단으로 망명한 뒤 태어난 마흐모드는 그들을 직접 만난 일이 없다. 사진과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물을 뿐이다. 그래도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러하듯, 마흐모드에게 가족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뿌리’에 의지하는 것은 오랜 이산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마흐모드와 한국에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은 살림이 안정되고부터 팔레스타인의 가족들에게 1년에 두어 차례씩 돈을 보내주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선 어떤 일을 해도 돈 벌기 힘들어요. 우리만 잘 지내는 게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요.” “죽을 때는 꼭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길어지자 한국 내 아랍인들도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지난 8월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를 열고 있는 한국 거주 아랍인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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