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지서 정부 통치기능 강화 뜻
철학·화학 폐지 진화론교육 금지
철학·화학 폐지 진화론교육 금지
9일 새 학기가 시작된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의 학교들에서 미술, 음악 과목이 사라졌다. 역사, 문학, 기독교 수업은 영구 폐지됐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주요 점령지인 모술에서 새 교과과정을 시행하는 등 ‘정부’로서의 통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현지 주민들을 취재해 15일 보도했다.
지난 5일 모술의 모스크, 시장 등에는 이슬람국가 지도자이자 칼리프를 칭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2쪽짜리 통지문이 붙었다. 이 글은 “무지를 없애고 종교적인 과학을 전파하며 타락한 교과과정과 싸우기 위해 칼리프가 반포한 이슬람국가 교육령”이라며 새 학칙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라크와 시리아 공화국이란 말 대신 이슬람국가로 칭해야 하며, 교과서의 그림 가운데 극단주의 교리에 맞지 않는 그림들은 찢어내도록 했다. 진화론 교육을 명시적으로 금지했고, 남녀 학생을 분리해 가르치고, 남자 교사는 남학생만 여성 교사는 여학생만 가르치도록 했다.
이슬람국가는 지난 6월10일 모술을 장악했는데, 이는 이슬람국가가 시리아를 넘어 이라크 내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는 분수령이 됐다. 미국 등이 이들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이슬람국가는 점령지에 대한 행정력 행사를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무장세력이 아닌 통치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해 가고 있다.
시리아의 점령지에선 법원을 관장하고 도로를 수리하고 교통정리까지 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의 수도로 불리는 시리아 락까에서는 학교 교과과정에서 철학, 화학 같은 과목들이 폐지되고 종교 이데올로기 색채가 강화됐다. 미국이 이슬람국가 파괴를 위해 시리아까지 공습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슬람국가의 점령지 통제력은 굳건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 교육과정이 공표된 뒤, 많은 모술 주민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며 침묵의 저항을 하고 있다고 <에이피>는 전했다. 보복이 두려워 아부 하산이라는 가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주민은 “한 학년을 빼먹거나 학력 인증을 못받더라도 아이들이 올바른 지식을 교육받는 게 중요하다”며 시장에서 교재를 구해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슬람국가의 포고문은 “이번 발표는 의무적이며, 어기는 사람은 누구든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라크 중앙정부의 교육부는 모술을 비롯해 국토의 3분의 1이 이슬람국가의 수중에 있어 해당 지역의 학교들에 연락을 취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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