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 부부가 25일 인도 뉴델리 팔람 공군비행장에 도착해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인도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재임 기간 중 인도를 2번 방문한 대통령은 오바마가 처음이다. 뉴델리/AP 연합뉴스
부통령 특사 파견 계획에서 변경
영·프 등 서방 앞다퉈 조문 외교
사우디 인권유린 눈감고 실익 계산
영·프 등 서방 앞다퉈 조문 외교
사우디 인권유린 눈감고 실익 계산
25일 사흘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현지 일정을 단축하고 27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갈 계획이라고 백악관이 밝혔다. 미국은 애초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23일 새벽 타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드 사우디 전 국왕의 조문 특사로 보낼 예정이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가는 쪽으로 격을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도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새로 즉위한 살만 사우디 국왕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애도를 표했다.
타계한 압둘라 전 사우디 국왕이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을 사우디로 불러들이고 있다. 당일 오후에 곧장 장례식이 치러지고 이복동생인 살만(79) 왕세제가 새 국왕에 올랐지만, ‘눈도장’을 찍겠다는 외국 정상들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이 ‘조기’를 게양하는 등 ‘석유와 돈’의 힘 앞에서 서방이 강조해온 인권이라는 가치는 헌신짝이 됐다.
앞서 24일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프레데릭 덴마크 왕세자 등 10여개국의 지도자와 정상급 조문사절이 사우디를 방문해 애도를 표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 외신들이 전했다.
영국은 23일 엘리자베스 여왕의 관저인 버킹엄궁에 12시간 동안 자국 국기를 내려다는 조기 게양을 했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았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영국독립당의 더글라스 카스웰 하원의원은 “사우디 국왕 타계에 대한 조기 게양은 영국의 인권 기준에 비춰볼 때 극도의 판단 착오”라고 꼬집었다. 녹색당의 캐럴라인 루커스 하원의원은 “조기를 걸 정도로 사우디와 관계가 돈독한 정부가 사우디 시민의 인권과 자유 보장 문제 해결에는 왜 침묵하는지 대다수 국민은 의아해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우디는 최근 의붓딸을 죽인 여성을 공개적으로 참수하는가 하면 이슬람 가치에 반하는 글을 썼다며 진보성향 블로거에게 태형 1000대와 징역 10년을 선고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해마다 사우디에서는 합법적으로 수십명이 참수당한다.
미국 등 서방이 사우디의 인권 유린에 눈을 감는 것은 그만큼 사우디가 서방의 핵심 동맹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벌이고 있는 군사작전 등 미국의 대중동 전략에서 사우디가 핵심적인 지위와 구실을 맡고 있다. 또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일 뿐 아니라, 반미 성향이 뚜렷한 시아파 국가인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친서방 이슬람 종주국이다. 살만 국왕은 즉위 일성으로 “사우디의 외교·에너지 정책을 기존과 변함 없이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가톨릭 교리처럼 (좋든 싫든) ‘이혼할 수 없는 부부’ 관계였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사우디의 신임 국왕 즉위로 중대하고도 혼란스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보여온 태도에 사우디의 불만이 커지면서, 양국 관계도 조지 부시 전 미국 정부 시절의 긴밀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 정치개혁과 인권개선에서 상대적으로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냈던 압둘라 전 국왕과 달리 살만 새 국왕은 극히 보수적인 원리주의 성향이라는 점도 그런 우려에 한 몫 한다.
사우디 왕실은 압둘라 전 국왕이 타계한 23일 이슬람 예배 양식에 따라 간소한 장례식을 치른 뒤, 수도 리야드에 있는 알오드 공동묘지에 국왕의 주검을 평민들의 묘 옆에 나란히 안장했다. 묘소엔 봉분도 묘비도 남기지 않았다. 이는 모든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와하비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와하비즘은 이슬람국가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알카에다의 이념적 뿌리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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