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8일 텔아비브에 있는 리쿠드당 선거본부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선에서 집권 리쿠드당은 이츠하크 헤르조그 노동당 대표가 이끄는 중도좌파 시오니스트연합에 예상보다 큰 승리를 거뒀다. 텔아비브/AP 연합뉴스
이스라엘 총선서 리쿠드당 승리
30석 확보…예상밖 제1당 지켜
“팔 독립국가 불허”로 판세 역전
팔레스타인과 타협 여지 사라져
국론분열로 연정 구성 난항 예상
미 정부 당혹…“협상 나설것” 전망도
30석 확보…예상밖 제1당 지켜
“팔 독립국가 불허”로 판세 역전
팔레스타인과 타협 여지 사라져
국론분열로 연정 구성 난항 예상
미 정부 당혹…“협상 나설것” 전망도
17일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이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선거 막판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경 공약까지 내놓은 네타냐후의 총리 연임이 유력해지면서, 중동 평화협상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18일 오전 개표가 거의 마무리된 가운데 리쿠드당은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 전체 120개 의석 가운데 30석을 확보하며, 1당 자리를 지켰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중도좌파 시오니스트연합에 계속 뒤졌던 리쿠드당은 선거 막판 네타냐후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불허 등을 내걸고 보수 우익표를 끌어모으면서 선거판세를 뒤집었다. 리쿠드당의 의석은 여론조사 예상치보다 최대 9석이나 많고, 출구조사 결과인 27석보다도 3석 많다. 당초 승리가 예상됐던 시오니스트연합은 24석을 차지해 출구조사의 27석보다 뒤지며 2위에 머물렀다.
네타냐후 총리는 “2~3주 안에 새 정부를 구성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립정부 구성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국론분열이 심화됐고, 리쿠드당에 이념적, 정책적으로 동조하는 정당들이 과반에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막바지에 네타냐후가 꺼내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부정’ 카드는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약속한 오슬로 평화협정(1993년)에 부정적이었으나, 지금까지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는 못했다. 그는 2009년 두번째로 총리에 취임할 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극우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팔레스타인 국가 불허를 외쳤고, 아랍계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부정하는 인종주의적 발언까지 했다.
네타냐후는 최대 후원자인 미국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이 소유한 웹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영토를 비워서 (그곳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영토를 넘겨주는 세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로 선출되면 팔레스타인 국가는 수립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냐는 질문에 “확실하다”고 확답했다.
네타냐후는 또 다른 자리에서 아랍계를 향한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아랍계 유권자들이 좌파 단체에 의해 비둘기 떼처럼 버스로 실려가고 있다”며 “이스라엘 국민들의 진정한 의지가 좌파에 유리하게 왜곡되고 과격한 아랍계 정당에 과대한 권한이 부여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 진영은 뻔뻔한 인종주의 발언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네타냐후의 이런 발언은 불리한 선거 판세에서 지지층을 모으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그 결과 우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문제에서 그의 입장은 이제 여지가 없어졌다. 그의 이번 선거 승리는 이 발언에 힘입은 바 크다. 때문에 그가 재임하는 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폭풍이 어떨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유대인에 대한 부채 의식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던 유럽과 미국 정부 내에서도 당혹감이 번지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네타냐후가 오바마 행정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미 의회 연설을 강행한 데 분노했던 민주당 쪽은 격앙된 분위기로 변했다. 미 하원 외교위 소속의 제럴드 코놀리 민주당 의원은 “네타냐후는 미국 정부·미국 국민과의 사이에 놓였던 다리를 불살라 버렸다”며 “그런 행동은 보상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동특사를 지낸 마틴 인다이크는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익정부는 장기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국제사회와 대결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도 타협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막판 선거판세를 뒤집기 위해 선동 발언을 했지만, 실제로는 현실주의 정치인인 네타냐후가 그 공약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차히 하네그비 이스라엘 외무차관은 18일 “미국 행정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경신할 노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는 그 새로운 협상을 환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텔아비브 바일란대학의 쉬무엘 샌들러 교수도 선거를 끝낸 네타냐후가 미국,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은 이전보다 더 멀어졌고, 더 많은 유혈 사태가 예고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도 더욱 힘겨워졌고, 설사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이행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짙다. 또,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역에서 더욱 득세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70여년 유혈분쟁의 교훈이 증발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17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인근의 한 마을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승인한 유대인정착촌 추가 건설과 토지 몰수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멱살을 붙잡으며 제압하고 있다. 베들레헴/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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