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촌의 4살 아이
망원렌즈 카메라에 ‘항복’
망원렌즈 카메라에 ‘항복’
천진한 눈망울의 어린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양팔을 번쩍 치켜든 사진이 최근 전세계 온라인으로 퍼지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 사진 속의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입술을 닫은 채 큰 눈망울로 정면을 응시한다. 작은 팔은 마치 벌 서는 것처럼 귀에 꼭 붙었다. ‘항복할 테니 해치지 말아달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아이가 잔뜩 겁을 먹은 도구는 총이나 흉기가 아니라 카메라였다.
사진이 너무나 극적인 까닭에 세계 누리꾼들 사이에선 연출됐거나 조작된 사진이 아니냐는 의문도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이 슬픈 사진은 지난해 12월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 지역의 난민촌에서 촬영된 실제 상황으로 밝혀졌다. 촬영 당시 터키 일간 <튀르키예 신문> 기자였던 오스만 사으를르는 사진 속 어린이는 ‘후데아’라는 이름의 4살배기 여아라고 밝혔다. 당시 후데아는 엄마와 두 남매까지 네 식구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난민촌에 살고 있었다.
사으를르는 31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망원렌즈를 끼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아이는 그걸 무기라고 생각했다”며 “촬영을 하고 사진을 본 뒤에야 아이가 입술을 깨물고 손을 든 모습에서 겁에 질려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지난 1월 <튀르키예 신문>에 처음 보도되면서, 전쟁과 재난의 최대 피해자인 어린이들의 참담한 현실을 생생히 고발했다. 그 뒤 자칫 정보의 홍수 속에 묻혀 잊힐 뻔한 이 사진은 지난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사진가가 트위터에 올리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됐다.
사으를르는 “난민촌에는 수많은 실향민이 있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을 더욱 절감케 하는 건 천진난만한 느낌을 주는 아이들”이라며 세계의 관심을 호소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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