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수니파 아랍국가 동맹의 공습을 받은 예멘 수도 사나의 파지 아탄 언덕의 군사기지 인근 한 건물 옥상에서 21일 주민이 공습으로 뚫린 구멍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에게 여전히 충성하는 예멘 공화국수비대의 미사일 부대가 있는 이 기지에 대한 공습과 뒤이은 폭발로 적어도 민간인 38명이 숨졌다. 사나/AFP 연합뉴스
최소 944명 사망·3500명 중상
국제사회 압력·중재 따른 듯
미 항모, 공습 중단 담보물로
예멘 내부 세력 알력 작용 커
정치적 해결 낳을지 회의적
국제사회 압력·중재 따른 듯
미 항모, 공습 중단 담보물로
예멘 내부 세력 알력 작용 커
정치적 해결 낳을지 회의적
예멘 내전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습 중단 발표로 기로에 섰다.
사우디 국방부는 21일 예멘 시아파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인 ‘결정적 폭풍 작전’이 “후티 반군 등이 장악한 중무기와 탄도미사일 등을 파괴해 사우디와 이웃국가들의 안보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목적을 성취했다”면서 공습 중단을 발표했다. 사우디 국방부는 성명에서 “‘희망 회복 작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며 “이는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조처들을 결합하는 것으로, 예멘을 안정적이고 안전한 미래로 이끌 정치적 과정에 초점에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예멘 동북부 시아파 후티 반군들이 수도 사나를 점령하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이끌던 정부를 붕괴시키자, 지난 3월 초 전격적으로 예멘 공습을 시작했다. 또 수니파 아랍국가 동맹을 이끌며 예멘 내전에 개입해왔다. 사우디는 시아파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예멘에 대리정권을 세우려 한다고 비난하며 자신들의 개입을 정당화했다.
사우디의 공습 중단 발표 직후 후티 반군 쪽도 화답했다. 후티 반군 쪽은 하디 대통령 정부의 마흐무드 수바이히 국방장관과 하디 대통령의 동생인 나시르 만수르 하디 장군을 석방했다. 유엔 안보리는 예멘에 대한 금수조처를 결의하면서 수바이히 국방장관의 석방을 요구했었다.
사우디의 공습 중단은 일단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과 중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가 커지고 인도적 위기 사태가 악화하자 국제적 비난이 거세져왔다. 세계보건기구는 사우디의 공습 이후 적어도 944명이 숨지고, 3500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국제구호단체들은 이 공습이 민간인을 겨냥해 전쟁범죄에 준한다고 비난해왔다. 난민캠프 폭격으로 수십명이 숨지고, 치즈공장에 대한 공습으로 야간작업을 하던 노동자 31명이 숨지기도 했다. 또 사우디는 예멘을 봉쇄해 식량·연료·물 부족 사태를 야기했다.
미국은 중동의 최대 동맹국인 사우디의 이번 공습을 겉으로는 지지하면서도 정치·외교적 해결을 종용해왔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존 브레넌 중앙정보국장의 최근 사우디 방문은 그 일환이었다.
20일 파견된 미국 해군력은 이번 공습 중단의 담보물이 됐다. 미국은 항모와 유도미사일 탑재 순양함들을 예멘 근처 해역에 파견해, 이미 그곳에서 활동중인 7척의 미군 구축함에 합류시켰다. 미 국방부는 이 전함들이 예멘으로 접근중인 이란의 화물선들을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후티 반군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예멘에 무기를 지원하지 말라고 이란에 경고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공습 중단이 예멘 내전의 정치적 해결을 낳을지는 회의적이다. 사우디의 공습 표적이었던 후티 반군는 공습 이후에도 사나 등에서 건재한 한편 다른 지역에서 오히려 세력을 확장한 상태다. 애초부터 후티 반군과 이란과의 관계는 불분명했고, 특히 후티 반군이 이란의 대리 세력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후티 반군의 득세는 축출된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세력과의 결합 등 예멘 내부의 세력간 이합집산이 크게 작용했다.
사우디 국방부 대변인인 아흐마드 아시리 준장은 “후티 반군이 예멘 내부에서 활동하거나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계속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가 공습 대신에 후티 반군과 싸우는 대리 세력들에게 지원을 강화하는 식으로 새로운 군사 개입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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