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이슬람 고위성직자들 증언
9·11테러 뒤 독보적 존재 부상 불구
“무조건적 충성심…조직 붕괴”
“수천만달러씩 밀려들던 돈줄 말라”
이슬람국가 등장도 쇠퇴 부추겨
젊은이들, 힘빠진 알카에다 등돌려
9·11테러 뒤 독보적 존재 부상 불구
“무조건적 충성심…조직 붕괴”
“수천만달러씩 밀려들던 돈줄 말라”
이슬람국가 등장도 쇠퇴 부추겨
젊은이들, 힘빠진 알카에다 등돌려
“알카에다 최고지도자는 고립됐으며, 조직은 붕괴했다.”
알카에다의 ‘지적 대부’이자 ‘생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지하드 이론가’인 아부 무함마드 마끄디시(56)가 10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사마 빈라덴의 오른팔’이라고 불렸던 요르단 출신 성직자 아부 까타다도 동의했다. <가디언>은 지하디스트들의 사상적·이론적 지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국가(IS)의 등장과 지하드 조직들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상세히 보도하며, 알카에다가 붕괴 직전에 놓였다고 전했다.
이슬람국가(IS)의 모태인 ‘이라크이슬람국가’(ISI)를 설립한 아부 무사위 자르카위의 스승인 마끄디시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아이만 자와히리(63)가 “충성 맹세에만 의존해 활동한다”며 “(알카에다에) 조직적 구조는 없고, 오로지 대화 채널과 충성심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해온 의사 무니프 사마라는 알카에다가 처해있는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그는 한때 수백만~수천만달러씩 밀려들던 돈줄이 마르고 있다고 전했다. 기부금은 이슬람국가로 흘러들어가거나, 두 단체의 피튀기는 싸움에 질린 기부자들이 아예 지원을 끊어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알카에다에 몸담았던 다른 조직원은 파키스탄 알카에다 본부의 재정문제가 심각해 지난해에는 식료품과 집세를 대기 위해 컴퓨터와 차까지 내다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사마라는 “지금 시점에선 알카에다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알카에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하드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자금과 지원자는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조직은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알카에다는 무장단체들이 연계하고 재정적·조직적 지원을 얻을 수 있는 허브 구실을 했다. 빈라덴이 요구한 것은 단 한가지, 무조건적인 충성심이었다. 마끄디시와 까타다는 “아무도 그에게 반대하지 않았다”며 “빈라덴은 특별한 카리스마를 가진 스타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빈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된 이후 2011년 조직을 넘겨받은 자와히리는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미국의 드론들이 포위망을 좁혀왔고, 그의 지도력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 산악지대에 고립됐다.
자와히리의 지도력이 결정적으로 도전을 받은 것은 2013년 4월8일, 알카에다의 중동 핵심지부였던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바그다디가 시리아에서 승승장구하던 누스라전선과의 공식 통합을 선언하며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창립을 선언한 때였다. 누스라전선을 이끄는 아부 무함마드 자울라니가 시리아에서 승승장구하자 위협을 느낀 바그다디가 선수를 친 것이다. 자울라니는 바그다디가 시리아에 파견한 인물이었다. 자와히리는 바그다디의 직무를 정지시켰으나 바그다디는 “알카에다는 끝났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2013년 겨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시리아의 다른 반군이 특사로 보낸 젊은 의사를 주검으로 돌려보내자 누스라전선을 포함한 시리아 반군들은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14년 이들의 피비린내나는 조직간 내전으로 수천명이 죽었다. 자와히리는 그해 1월22일 알카에다에서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를 추방했고, 이슬람국가는 자와히리의 특사를 폭사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슬람국가의 극단적인 선택 뒤에는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잔존 세력이 있었다. 자르카위가 조직을 이끌던 시절에는 바트당 출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006년 자르카위가 사망한 뒤 바트당 출신들이 무명에 가까웠던 바그다디를 지도자로 추대했다. 이라크 공군 정보장교 출신인 하지 바크르가 이슬람국가 탄생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영향력이 큰 마끄디시와 까타다는 요르단의 감옥에서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의 내전을 지켜봤다. 까타다는 이슬람국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끄디시의 생각은 달랐다. 마끄디시는 2013년 말께 이슬람국가의 지도부에 있는 제자 트루키 비날리를 통해 중재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슬람국가는 사상적 지도자들이 모두 등을 돌리면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여겼다. 비날리가 내놓은 묘안은 ‘돈’ 이었다. 예멘 알카에다에는 바그다디에 충성을 맹세할 경우 10만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리비아의 조직에는 5만달러를 제안했다. 이들은 모두 이슬람국가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전세계의 다른 지하드 조직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집트와 리비아, 파키스탄, 예멘에서까지 지원자들이 밀려들었고, 충성을 맹세한 조직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의 등장으로 한때 전세계 지하디스트를 하나로 묶었던 알카에다는 몰락의 위기에 놓였다. 마끄디시는 알카에다가 일반 대중들을 지원하는 사회사업 등을 통해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알카에다의 한 지역 사령관은 <가디언>에 “병사들은 이런 새로운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지도자인 자와히리가 이슬람국가의 지도자인 바그다디에 충성 맹세를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마라는 “젊은 병사들은 행동과 피, 폭발물을 원하며 알카에다가 뭔가를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알카에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한테 이슬람국가의 유혹은 강렬하지만, 알카에다는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아이만 자와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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