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30일 시리아에 대한 첫 공습을 단행했다. 사진은 시리아 중서부에 있는 홈스 주 탈비세의 건물들이 무너진 모습이다. 홈스(시리아)/APF 연합뉴스
의회 ‘러시아군 파병’ 승인 직후
아사드 지원·서방 압박 약화 포석
아사드 지원·서방 압박 약화 포석
러시아 전투기들이 30일 러시아 연방의회가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승인한 직후 시리아에 대한 첫 공습을 단행했다.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해온 러시아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명분으로 삼아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작전을 개시했다”며 “이슬람국가에 소속된 것으로 믿어지는 기지와 군 차량, 군수창고 등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텔레비전에 방영된 연설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내 지하디스트들이 러시아에 오는 것을 기다릴 게 아니라 이들을 파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러시아는 공습에 앞서 미국 쪽에 시리아에서 미군 전투기들이 이륙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어느 지역에 공습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미국 쪽에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시엔엔>(CNN) 방송은 보도했다.
그러나 러시아 전투기들이 공습한 대상이 이슬람국가 기지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시리아 보안군은 러시아의 공습지역이 홈스와 하마, 라타키아 등 3곳이라고 밝혔다고 <아에프페> 통신은 전했다. 홈스와 하마는 시리아 반군의 장악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슬람국가가 공격을 단행하는 등 이들의 활동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이들 공습 지역이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곳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러시아의 움직임은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회피하려는 노력에 거스르는 것이며 그런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러시아가 공습한 지역이 이슬람국가 기지가 아니라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리아 반군 기지일 경우 시리아 내전 사태를 더 복잡하게 꼬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러시아 연방의회는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요청한 ‘러시아군의 시리아 파병’을 승인했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행정실장은 이날 의회 표결 뒤 “연방의회가 만장일치로 대통령의 파병 요청을 승인했다”며 “지상군은 파견하지 않을 것이며 군사작전의 목표는 이라크와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 세력에 대한 시리아 공군의 전투를 지원하는 데 한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모든 파트너 국가들에도 오늘 중으로 러시아의 공군력 사용 결정을 통보할 것이며, 해당국 국방장관들과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리아 대통령실은 이날 성명에서 아사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공군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시리아 파병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여러 가지 포석을 두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이번 공습을 통해 위기에 처한 아사드 정권을 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더라도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지분을 확고히 해 이후 과도정부 체제 출범 시에도 목소리를 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슬람국가 격퇴전에서 서방국가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에 대한 서방국가의 압박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러시아의 공습으로 시리아 내전의 해법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러시아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쏟아지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벌어진 내전에서 2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도 커졌다.
러시아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이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푸틴의 파병 요청은 지난 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한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며 “러시아 소식통들은 이번 결정이 미국을 놀라게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7일 정상회담 준비차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개입으로 미-러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피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회담에서 두 장관은 시리아의 향후 정치적 과도체제에 관한 다양한 방안도 논의했다. 또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지난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50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두 장관이 대화를 한 것은 1년여 만에 처음이다.
<로이터> 통신은 29일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아사드 정권이 한동안 더 존속할 수 있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리게 한 것 같다”고 짚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 항구인 타르투스에 자국 해군의 기항권을 확보한 데 이어, 최근엔 최신예 수호이-34 전폭기 4대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로 진출하는 규모도 부쩍 늘고 있다고 <유로뉴스>가 군함의 이동을 관측하는 터키의 한 민간단체를 인용해 29일 보도했다. 최근 일주일 새 다목적 상륙함을 포함해 수많은 군함들이 흑해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지중해로 나왔으며, 시리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일준 박현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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