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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5개국과 하늘나라로 뿔뿔이…‘알란 쿠르디’ 일가의 비극

등록 2015-12-29 20:17수정 2015-12-29 21:01

NYT, 쿠르디 일가 행방 추적
‘IS 점령’ 위기에 시리아서 피난길
터키 밀입국뒤 캐나다행 거부당해
알란 죽음 계기 삼촌네 캐나다땅에
가족 잃은 아빠는 홀로 이라크 체류
터키 해변에 주검으로 밀려왔던 세 살배기 알란 쿠르디는 피난길에 오른 대가족의 일원이었다. 참혹한 시리아 내전은 다마스쿠스와 코바니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쿠르디 일가를 이승과 저승, 그리고 5개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이는 시리아 국경을 넘은 난민 400만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는 28일 이라크와 독일·시리아·캐나다·터키에 흩어져 있는 알란의 친척 20명과 한 인터뷰를 통해 쿠르디 일가의 행방을 추적해 보도했다. 2011년 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1992년 결혼해 캐나다로 떠난 알란의 고모 파티마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시리아를 떠날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알란의 할아버지는 코바니에서 태어났다. 터키와 국경을 맞댄 시리아 쿠르드족 지역이다. 그는 일자리를 찾아 다마스쿠스로 가서 쿠르드족이 몰려 사는 루키네딘에 정착했다. 할아버지는 이발소를 차렸다. 6남매를 둔 할아버지는 여름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코바니로 가 올리브 농장에서 수확을 했다. 평범한 가정이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2011년 ‘아랍의 봄’ 때였다.

운 좋게 28일 캐나다에 도착한 알란의 삼촌 무함마드 쿠르디 가족은 내전이 격화되자 다마스쿠스 동쪽 외곽 구타를 떠났다. 알란의 할아버지가 있는 루키네딘으로 갔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쿠르드족이 안전지대를 만들려고 했던 고향 코바니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2014년 9월 이슬람국가(IS)가 코바니로 들이닥쳤다.

가족은 터키행을 결심했다. 이슬람국가 검문소에서 무함마드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내 구순은 “(무장대원들이) 남편을 총으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고 회고했다. 그들은 아들에게 “아빠를 쏘라”고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빠져나온 가족은 터키 밀입국에 성공했다. 지난 6월 무함마드는 이스탄불에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브로커들이 제공한 배를 타고 그리스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다. 무함마드는 파티마의 주선으로 캐나다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서류가 미비해 거부당했다. 그리고, 9월 알란이 죽었다. 시리아 난민들에게 세계의 문이 조금 열렸고, 이 과정에서 무함마드 가족의 캐나다행이 성사됐다.

“난 기뻐요. 무척 기쁩니다.”

부인과 다섯 자녀의 손을 잡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했다. 무함마드는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긴 여정이었다.

알란네 가족에 앞서 에게해를 건너려고 나섰던 건 알란의 고모 히브룬네 가족이었다. 두 차례 실패 끝에 히브룬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스탄불로 돌아갔다. 다시는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함께 죽거나 함께 살아 미래를 만들자”는 15살 딸의 말에 흔들려 다시 유럽행을 시도했고, 이번엔 성공해 독일에 도착했다. 한 아이는 배를 탔던 때를 떠올리며 “공포영화 같았다!”고 말했다. 이들도 일단은 소원을 이뤘다. 모두가 한지붕 아래에서 살게 됐다. 히브룬 가족은 내년 9월27일 난민 자격심사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쿠르디 일가의 행운은 여기까지다. 두 아들과 부인을 잃은 알란의 아빠는 혼자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가 있는 아르빌에 살고 있고 또다른 형제는 시리아에 남아 있다. 쿠르디 일가가 떠난 코바니의 올리브나무들은 불태워졌고 집들은 파괴됐다. 18명의 친척은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알란의 할아버지는 폐허가 된 시리아에서 뿔뿔이 흩어진 자식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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