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시아파 지도자 등 47명 처형 촉발
사우디, 내정 불안 돌파구로 삼아
바레인·수단도 이란과 단교 선언
시리아 내전·IS격퇴 해법 ‘먹구름’
시아파 지도자 등 47명 처형 촉발
사우디, 내정 불안 돌파구로 삼아
바레인·수단도 이란과 단교 선언
시리아 내전·IS격퇴 해법 ‘먹구름’
사우디아라비아가 3일(현지시각) 이란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발표했다. 새해 벽두부터 이슬람의 양대 진영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단절로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됐다.
사우디에서 2일 집행된 사우디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 니므르 알니므르의 처형이 이번 사태의 계기다. 사우디 왕정 반대 등을 주장했던 시아파 시위의 배후로 지목된 니므르는 테러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이날 알카에다 대원 등 46명과 함께 전격 처형됐다. 그의 처형은 중동 전역의 시아파 공동체에서 성토 시위를 촉발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에서는 2일 저녁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시위대들이 화염병을 던졌다. 두번째 큰 도시 마슈하드의 사우디 영사관에도 시위대가 난입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신의 복수의 손이 사우디 정치인들의 목덜미를 움켜쥘 것”이라며 사우디 권력자들에 대한 죽음의 보복까지 암시했다.
사우디 외무부는 3일 이란의 “맹목적인 종파주의”와 테러 전파를 비난한 뒤 몇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국교 단절을 발표했다. 아딜 주바이르 외무장관은 자국 주재 이란 외교관들에게 48시간 내로 출국하라고 통보했다. 그는 “이란의 역사는 아랍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간섭으로 가득하며, 언제나 폐허와 파괴, 무고한 생명의 학살이 뒤따랐다”고 비난했다. 4일에는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 맹방인 바레인과 수단이 이란과의 국교 단절을 선언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과 외교 관계 수준을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공사)급으로 낮췄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는 지난해 7월 이란 핵협상 타결 전후로 급속히 악화됐다. 핵협상 타결로 이란이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것을 사우디는 우려한다. 당시 사우디 쪽은 이란만큼 자신들도 핵개발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앞서 3월 사우디는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을 이란이 지원하고 있다며 예멘 내전에 전격 개입했다. 지난 9월 메카 순례 때 압사 사태로 숨진 2400명의 순례자 중 450명의 이란인들이 포함되자, 이란은 사우디의 무능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번 처형 사태는 사우디의 의도된 조처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처형이 가져올 종파분쟁에 대한 우려를 몇달 전부터 사우디에 전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사우디는 미국의 우려를 일축했다. 안팎의 내우외환을 이란과의 대결로 돌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내에서 가중되는 민주화 및 개혁 요구,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난, 왕위 계승 불안 등의 사태 앞에서 사우디 정부는 전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사우디 왕정을 떠받치는 최대 세력인 근본주의 성향의 와하비즘 성직자들은 시아파에 대한 강경 대처를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미, 사태 통제가능하다 전망”
국내에서는 정권 지지 기반을 달래고, 국외로 관심을 돌릴 필요성이 있었다.
사우디가 니므르의 처형 발표 직후, 예멘 내전에서의 휴전도 파기하겠다고 밝힌 데서도 이런 의도는 잘 드러난다. 사우디는 지난달 중순 휴전을 발표하고도 지키지 않았다. 사우디가 그마저도 파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란과의 대결을 겨냥한 조처다.
2차 대전 직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시작된 현대 중동분쟁은 70년이 지나면서 각종 분쟁 구도가 겹겹이 쌓여왔다. △아랍 대 이스라엘 및 서방이라는 반식민 투쟁 △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종교 분쟁 △권위주의 대 민중이라는 민주주의 투쟁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라는 성속 분쟁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종파 분쟁 △다수민족 대 소수민족이라는 민족 분쟁 △중동 역내 국가 사이의 분쟁이라는 7대 분쟁 구도가 얽히고설켜 있다.
최근 중동분쟁의 핵심인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 사태에서도 이 모든 분쟁 구도가 중첩된다. 그중에서도 사우디의 수니파 진영 대 이란의 시아파 진영의 분쟁이 가장 큰 동력이다.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은 시아파 진영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이슬람국가의 성장과 생존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 시리아 내전도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쟁’ 성격이 짙다. 이란은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의 바샤르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고, 사우디는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는 반군 세력들을 지원한다. 이런 대립 구도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 반군 세력을 지원하는 서방 사이의 대결로 확장됐다.
수니파 사우디 대 시아파 이란의 종파 분쟁 및 패권 다툼은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달에 시작되는 시리아 국제평화회의가 그 첫 희생물이 될 공산이 크다. 이란 쪽이 사우디 대사관 난입 시위대 40명을 체포하는 등 절제된 반응을 보이는 데에 미국 쪽은 이번 사태가 통제 가능하다는 희망도 걸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두 나라는 1988년에도 대사관 점거 등을 둘러싸고 국교 단절 사태를 빚었으나,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이란이 비판하며 사우디를 편들자 91년에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두 나라가 양국 관계를 내정에 활용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사태를 더 확대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중동분쟁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버린 상태다. 중동은 올 한해 더 거센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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