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파키스탄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뉴욕 타임스>국제판이 1면의 한 가운데가 휑하게 빈 지면으로 발행됐다. 검열로 기사가 통째로 빠져버린 것이다. 이 기사가 이어진 2면은 거의 전면이 하얀 백지로 인쇄됐다. 파키스탄의 독자들이 볼 수 없었던 이 기사는 현지 통신원 조슈아 해머 기자가 쓴 ‘위험에 빠진 방글라데시의 블로거들’이란 제목의 보도였다.
‘온라인 인권활동가 피살’ 기사
1·2면서 통째로 들어낸 채 인쇄
세속주의 인권운동 확산 경계
이같은 사실은 <뉴욕 타임스>의 또다른 파키스탄 통신원인 살만 마수드 기자가 검열로 기사가 삭제된 이날치 현지 신문과 <뉴욕 타임스>온라인판의 원래 지면을 나란히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삭제된 기사는 파키스탄의 인접국 방글라데시에서 잇따르고 있는 온라인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습격과 살인 사건을 다룬 것이었다. 2001년부터 방글라데시에서 사상의 자유, 남녀평등, 무신론, 세속주의적 인권 등을 주창했다가 2013년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흉기 습격을 받은 뒤 유럽으로 망명한 아시프 모히우딘과의 인터뷰 형식의 기사였다. 방글라데시에선 지난해에만 적어도 4명의 온라인 인권 활동가들이 살해되고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일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의 파키스탄 인쇄를 맡는 현지 신문 <익스프레스 트리뷴>이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삭제한 채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3월에는 파키스탄 정부와 알카에다의 유착 의혹을 다룬 ‘파키스탄이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알았던 것’이란 제목의 1·2면 기사가 통째로 빠진 채 나왔다. 당시 <뉴욕 타임스>대변인은 “(기사 삭제를) 우리에게 알리거나 합의하지도 않았다”며 “제휴사가 현지에서 때때로 (정부의) 압박을 받는다는 건 이해하지만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검열은 유감이다”고 밝힌 바 있다.
파키스탄의 언론 검열은 권력 상층부와 이슬람 기득권층이 이슬람에 반하는 세속주의적 인권운동의 확산을 경계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