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조사단 보고서 ‘반미 아랍 지도국’ 정조준
레바논 정계 파장…무장군인 등 1만여명 경계령
미·프, 제재 착수…시리아 “고립 노려 사건 악용”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을 조사해온 유엔 조사단의 보고서가 시리아 정부를 정조준했다.
지난 2월 폭탄테러로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된 사건을 조사해온 유엔 조사단은 레바논에 29년 동안 군대를 주둔시키고 레바논 정국을 좌우했던 시리아의 최고위층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고 결론지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매형이며 최측근인 아세프 샤우카트 시리아군 정보총수가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이 지역 정국에 폭풍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
조사단은 20일 보고서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했으며, 이는 다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레바논 정부에 전달됐다.
보고서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는 “아랍 지도국”을 자임했던 시리아 정부를 옥죄고 있다. 보고서는 “암살사건은 시리아와 레바논 정보 당국자들이 몇 달 동안 용의주도하게 계획해 실행한 테러행위”라며 두 나라의 최고위층이 승인·공모하지 않고는 실행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검사 출신인 데틀레브 메흘리스가 이끄는 조사단은 4개월 동안 방대한 증거를 검토했으며, “2004년 9월 유엔 안보리에서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지 2주 뒤에 레바논과 시리아 고위 관리들이 하리리의 암살을 결정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레바논과 시리아는 초긴장 상태다. 레바논 정부는 21일 수도 베이루트 등에 1만여명의 무장군인과 경찰 병력을 배치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비시>가 보도했다. 친시리아계와 반시리아계 등 다양한 파벌들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레바논 정계에 끼칠 파장도 클 전망이다. 이날 일부 의원들은 친시리아계인 에밀 라후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메흘리스 조사단장은 25일 유엔 안보리에서 조사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며, 안보리 회원국들은 시리아 제재 문제를 논의한다.
지난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파리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 등 미국과 프랑스는 벌써 시리아 제재 논의를 시작했다.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0일 “우리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많은 국가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시리아에 외교·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최근 <시엔엔> 등과의 인터뷰에서 “100% 결백하며, 미국이 우리를 고립시키기 위해 하리리 사건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시리아를 30년 이상 통치했던 아버지로부터 5년 전 권력을 넘겨받은 아사드 대통령은 원로세력들의 견제와 개혁파의 반발로 권력기반이 취약한 실정이다.
다음주에는 시리아 군과 정보당국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했는지와 시리아가 지원해온 무장단체 헤즈볼라 문제 등에 관한 또다른 유엔보고서가 나올 예정이어서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압박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다음주에는 시리아 군과 정보당국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했는지와 시리아가 지원해온 무장단체 헤즈볼라 문제 등에 관한 또다른 유엔보고서가 나올 예정이어서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압박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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