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미래는 국제사회 손에”
고위 성직가들 ‘정체성 선언’ 회람
고위 성직가들 ‘정체성 선언’ 회람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강력한 권력 기반인 이슬람 알라위파가 아사드와 결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내전 5년을 넘긴 시리아의 알라위파 고위급 성직자들과 장로들이 아사드 정권과 거리 두기를 분명히 한 문건을 회람하고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정체성 개혁 선언>이란 제목의 8쪽짜리 문건은 먼저, “알라위는 이슬람의 제3의 모델을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은 알라위파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오랜 비밀주의를 끝내고 빛으로 나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건은 작성자들의 신변 위협을 우려해 익명으로 작성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권의 정통성은 오직 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이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며 “알라위 신도들이 아사드 정권의 범죄에 연루되어선 안되며, 시리아의 미래는 국제사회의 손에 달려 있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들은 “평등, 자유, 시민권의 가치를 옹호하고 종파주의 분쟁에 맞서 싸우는 데 헌신한다”며 “시리아의 미래는 (시아파 국가의 신정일치가 아닌) 세속주의로, 이슬람과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평등한 나라”라고 밝혔다. 문건을 작성한 성직자들은 이번 ‘정체성 선언’이 알라위파 공동체를 해방시키고 알라위파와 아사드 정권 사이의 탯줄을 끊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도 높은 표현은 시리아의 현 대통령인 바샤르 아사드와 그의 아버지이자 전 대통령인 하페즈 아사드 집권 시절까지 아사드 가문의 45년 독재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모든 형태의 지지를 철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리아 인구 2400만명의 12%에 불과한 소수 알라위파가 아사드 세습정권과 결탁해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해온 과거에 비춰, 이번 문건은 알라위의 재탄생을 알리는 혁명적 선언에 가까워 보인다.
수니파와 시아파로 양대 세력을 이룬 이슬람교에서 알라위파는 시아파의 분파 정도로 알려져왔다. 알라위파는 10세기께 이라크에서 출현했으나 ‘이단’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탓에 극도의 비밀주의로 교세를 키워왔다. 알라위파라는 명칭은 이슬람교의 제4대 칼리프이자 시아파의 첫번째 이맘인 ‘알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게 통설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방의 한 외교관은 <비비시>에 “이 문건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그 정권, 그리고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 집단과도 연계를 끊겠다는 것으로, 매우 의미심장하고 중요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만일 이 문건이 아사드 정권과 알라위파에 불리한 시기에 나왔다면 자비를 탄원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지금은 아사드 정권이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강력해진 시기이므로, 이 문건은 알라위파 지도자들이 ‘우리가 누구인가’를 선언하는 성명이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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