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아프간 사이클스> 페이스북 갈무리
“후원을 하면 여성들의 권한이 높아질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죠.”
2012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여자 사이클 국가대표팀을 후원해왔던 미국 ‘마운틴 투 마운틴’ 재단의 섀넌 갤핀 대표는 지난달 아프간 사이클 연맹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자 선수들이 국제 경기에 참가하기는 커녕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연맹에서는 선수들을 위한 지원금을 유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갤핀 대표는 “선수들에게 지원한 선수용 자전거마저 담당 코치가 다른 곳으로 빼돌린 정황이 확인됐다”면서 사이클 연맹의 부정부패는 “통제 불능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쟁과 테러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훈련을 하며 희망을 보여준 아프간 여성 운동 선수들이 스포츠 연맹의 부정부패와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26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바로 아프간 여자 사이클 대표팀이다. 여자 사이클 대표팀은 2013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아프간 사이클스>를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올해에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는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을 지원해온 ‘마운틴 투 마운틴’ 재단은 사이클 연맹 회장이자 팀 코치인 하지 압둘 세디크 세디키가 10만달러 규모의 자전거와 레이싱 장비들을 횡령해 온 사실을 밝혔다. 아프간 올림픽위원회는 세디키를 코치직과 사이클링 연맹 회장직에서 즉각 해임했지만, 이 사건은 아프간 스포츠 연맹의 고질적인 비리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2009년 여자 크리켓 선수로 활약했던 디아나 바라크자이는 최근 “위원회로부터 20만 달러를 낸다면 여자 크리켓팀 감독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이 왔다”며 감독직이 돈으로 거래되는 현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아프간 사이클스> 페이스북 갈무리
아프간 여자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이들이 지원금을 모으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간 여자 축구 대표팀은 2014년 이후 국제 경기에 단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여자 크리켓 대표팀 역시 지난 3년간 제대로 된 훈련을 받거나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감독직 거래 의혹으로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이에 대해 샤피크 스타니크자이 아프간 크리켓 위원회 회장은 “(크리켓 팀은) 현재 국제적 수준에 못 미치는 초보적인 수준으로, 비밀리에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매년 아프간 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150만달러를 지원하고 있는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관은 최근 여자 크리켓 경기가 계획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지원금 45만달러를 회수하기도 했다.
운동 선수로 활동하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아프간의 보수적인 문화도 여자 선수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다.
2007년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 활약하다 현재 미국 뉴저지의 드류 대학에서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샤밀라 코헤스타니는 최근 아프간으로 돌아가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려 했던 자신의 꿈을 접었다. 그는 “여자 선수들은 단지 해외의 지원금을 모으는 존재로 인식된다”며 “아프간 여자 선수들은 단순히 남성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천박한 여성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보통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데, 여자 선수들이 결혼 뒤에는 운동을 접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오는 8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할 예정인 여자 태권도 선수 소마야 굴라미는 아프간 여자 선수들 중에서도 그나마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그는 “아프간에서 살고 있다면, 선수로서 경쟁력을 절대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행히도 집안 분위기는 자유로운 편이고, 가족들도 내가 운동하는 것을 지지해주고 있다”고 했다. 아프간 국적인 그는 현재 가족들과 함께 이란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훈련 기간에만 아프간과 이란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