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최대 유전인 루밀라 유전. 이 유전 이권은 이라크 전쟁 뒤 영국 석유기업 비피(BP)에게 돌아갔다. 비피 등은 이라크 전쟁에 영국이 참전해야 영국 기업들이 전쟁 뒤 석유 이권 등을 따낼 수 있다고 로비했다고 칠콧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라크 전쟁은 석유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전부터 전쟁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대표적인 담론이었다.
6일(현지시각) 발표된 영국 정부의 이라크전 개전에 관한 ‘칠콧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들을 공개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영국 석유기업들이 이라크 석유 이권을 노리고 영국 정부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면, 전후 이라크 석유 이권이 미국이나 러시아 석유기업들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는 얘기다.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가 미국과 함께 서둘러 이라크전 개전 결정을 하는 데에 석유기업들의 로비와 이권 확보가 작용됐음을 시사한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이라크 전쟁 시작 5개월 전인 2002년 10월 비피(BP)와 로열더치셸 등 영국 석유기업의 대표들이 엘리자베스 사이먼스 당시 통상장관을 찾아가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에서 자신들의 몫을 논의했다. 블레어 총리의 외교보좌관 데이비드 매닝에게 이 모임을 브리핑한 서류는 “이런 논의들은 미국 관리 및 미국 석유 분야 기업들과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이 영국의 관여없이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열렸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러시아 쪽의 반대를 무마하려고 전쟁 뒤 러시아 석유기업들에게 이라크 석유 이권을 제공하려 한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실제로, 딕 체니 당시 미국 부통령이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당시 러시아의 이라크 특사, 영국 관리들과 만나 “이라크에서 미국과 함께 작전한 나라들의 계약 입찰들은 더 호의적으로 취급받을 것이다”고 말한 보고를 인용한 서류들도 있다. 사이먼스 통상장관은 잭 스트로 당시 외무장관에게 이 문제를 “급박한 사안으로 당신의 관심을 끌어내겠다”고 (영국 에너지 기업들에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스트로 장관에게 영국 기업들은 “현재 거래가 진행되고 있으며 영국의 이익들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다”고 말해, 영국 석유기업들의 우려를 전했다.
보고서에 인용된 서류들은 영국 각료들과 관리들이 이라크 전쟁의 동기가 석유라고 비쳐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회피하려고는 했으나, 예상됐던 에너지 이권 계약을 상실할까봐 노심초사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마이어 당시 미국 주재 영국 대사는 영국 기업들을 위한 계약 확보가 ‘두번째 목표’라는 한 정부의 보고서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전후 이라크의 영국 계획에서 사실상 “최우선 사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블레어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제기해야만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 뒤 이라크 석유 정책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고,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장악하자, 점증하는 영국 쪽의 불만을 보여주는 서류들도 있다. 스토로 장관은 2003년 6월 블레어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 기업들에게 기회를 주라고 부시 대통령을 “매우 강력하게” 압박해 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총리께서 아시는대로, 미국은 완전히 무도할 정도로 미국 기업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어서, 총리가 부시에게 강경하게 대하지 않으면 영국 기업들을 도울 수 없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편지를 받은 뒤 블레어는 부시에게 지멘스의 영국 자회사가 이라크의 전력장비 입찰을 따내려 하는데 경쟁 기업인 미국의 지이(GE)가 방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몇주 뒤 미국 주재 영국대사관은 지멘스의 입찰에 대한 현지 정부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는 보고를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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