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선거 논란이 일고 있는 아프리카 가봉 수도 리브르빌에서 의회 쪽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리브르빌/AFP 연합뉴스
부정 선거 논란이 일고 있는 아프리카 서부의 가봉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의회에 불을 질렀다.
31일(현지시각) 가봉의 패컴 무벨레트 부베야 내무장관은 지난주 시행된 대선 개표 결과, 알리 봉고(57) 현 대통령이 49.8%를 얻어 48.23%를 득표한 장 핑(73)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봉고 대통령은 42년 동안 가봉을 통치했던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이 숨지자, 2009년 대통령에 당선돼 사실상 대통령직 부자 세습을 했다. 이번에 아들 봉고 대통령이 7년 임기 대통령직 재선에 성공하면서 봉고 부자의 가봉 통치는 반세기를 훌쩍 넘기게 됐고, 국민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봉고 대통령은 대선 결과 발표 뒤 “이런 근소한 차이로 승리가 선언됐다면, 우리 모두는 선관위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핑 후보 쪽은 자체 집계 결과, 자신들이 59%를 득표했고 봉고 대통령은 38% 득표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핑 후보 쪽은 봉고 대통령이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재검표를 요구했다. 수도 리브르빌에서는 핑 후보를 지지하는 시위대 수백명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 일부 시위대는 31일 저녁 의회 건물 일부에 불을 질렀고 소방대가 출동해 화재 진압에 나섰으나, 이날 밤 늦게까지 멀리서도 의회에서 치솟는 불길이 보였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가봉은 인구 180만여명의 나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7530달러다. 석유 자원이 주요한 수입이지만 최근 국제 유가 하락 탓에 국가 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봉고 대통령에 맞선 핑 후보는 가봉 정치권의 핵심 인사였다. 아버지 봉고 대통령 때 외무장관을 지냈으며, 아버지 봉고 대통령의 딸인 파스칼린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파스칼린과 사이에서 아이 둘을 뒀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다. 핑은 파스칼린과 염문을 뿌릴 당시 이미 유부남이었다.
1975년 가봉의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 부부의 내한 환영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당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
봉고 대통령의 아버지로 30명 이상의 자녀를 뒀던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처음 방한했다. 첫 방한 당시 정부는 김종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한 ‘국빈영접 방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십만명을 길가에 동원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신형 승합차를 출시하면서 ‘봉고’라는 이름을 붙여 봉고 대통령의 존재를 전 국민에게 인식시켰다. 환대에 감동받은 봉고 대통령이 3박4일 순방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몇 시간을 더 머물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북한과 외교 경쟁을 벌이던 냉전 시대 한국의 풍경이었다. 이후에도 봉고 대통령은 10년 주기로 한국을 찾았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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