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0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에너지대회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의 암살이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을 둘러싼 국가들의 관계를 흔들고 있다.
터키 경찰 출신 암살범인 메블뤼트 알튼타시(22)는 저격 현장에서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고 외쳐, 자신의 범행이 시리아 내전과 최근 인도적 위기 현장인 알레포 전투와 연관됐음을 시사했다.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러시아는 바샤르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고, 터키는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지난 7월 터키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타도하려는 군사 쿠데타 실패 뒤 급속히 관계를 개선해왔다. 러시아가 미국에 비판적인 에르도안의 실각을 막기 위해 쿠데타 저지에 힘을 보태줬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두 나라는 현실적 이익을 챙기며 공조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터키는 쿠르드족 분리독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시리아 내전에서의 쿠르드족 세력 확장을 막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러시아 역시 시리아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터키와의 협력에 힘을 쏟았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는 쿠르드족 민병대가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환한 시리아 국경지대를 터키군이 점령하도록 방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아사드 정부군이 알레포를 탈환하는 동안 터키군과 반군들이 국경지대의 전략거점 알바브를 점령한 것을 말한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의 터키 전문가 에런 스타인은 이를 ‘알바브를 위한 알레포’ 거래라고 불렀다.
이번 암살 사건을 놓고 터키에서는 러시아-터키 관계를 경색시키려는 음모라는 반응이 나온다. 두 나라가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속내를 보여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즉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테러 세력에 맞서는 두 나라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시리아 내전을 두고 두 나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히려 에르도안 쪽은 이번에도 지난 쿠데타 때처럼 미국에 망명 중인 자신의 정적 펫훌라흐 귈렌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귈렌의 송환을 요구하는 에르도안의 미국 때리기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스타인은 “이번 사건의 최대 패자는 워싱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협력을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19일 정식 성명을 내고 베를린 트럭 테러와 카를로프 대사의 암살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라며 규탄했다. 트럼프에게는 이번 사건이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한 러시아와의 공조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 악화된 터키와의 관계도 풀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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