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에 불복하고 버티던 아프리카 감비아의 독재자가 망명하면서 나랏돈을 모조리 빼돌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아프리카 북서부 소국 감비아의 아다마 바로(51) 신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인 마이 아마드 파티는 22일 인접국 세네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야히아 자메(52) 전 대통령이 전날 밤 가족과 함께 적도기니로 망명하기 전 2주 새 최소 1140만달러(133억원)를 국고에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감비아 독재자 야히아 자메(흰색 옷) 전 대통령이 21일 밤 망명하기 위해 수도 반줄 공항에서 비행기에 타고 있다. 반줄/AP 연합뉴스
파티 보좌관은 또 자메 전 대통령이 감비아를 빠져나갈 때 차드 국적의 화물기에 고급 자동차들을 포함해 값나가는 재물들을 싣는 것이 목격됐다며, “감비아는 국고가 사실상 바닥났다. 재무부와 중앙은행의 전문가들이 확인한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적도기니 공항 당국자들도 22일 자메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기니의 수도인 말라보 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타는 동안 4개의 화물 컨테이너가 공항에 체류한 사실을 확인해줬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감비아의 아다마 바로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전임 독재자의 선거 불복과 비상사태 선포로 피신 중인 인접국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카르/AP 연합뉴스
자메는 1994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22년간 독재정권을 유지하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바로에게 패배했다. 그는 선거 결과에 불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임기 연장을 시도했다. 이 때문에 정치·사회적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 수만명이 국외로 탈출하는 혼란이 벌어졌고, 바로 당선자는 인접국인 세네갈로 피신한 상태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해야 했다.
그러나 자메의 퇴진을 압박해온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15개국이 20일 군사 개입을 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보내자, 자메는 결국 이튿날 밤 망명길에 올랐다. 바로 대통령은 조만간 귀국하는 즉시 의회와 협력해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내각을 구성하는 등 정권교체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감비아 대선 패배에 불복하던 야히아 자메 전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소속 세네갈 병력이 수도 반줄에 들어오자 시민들이 장갑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반줄/AP 연합뉴스
한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와 유엔, 아프리카연합(AU)이 자메 전 대통령과 그 가족, 측근들에게 신변안전과 합법적 재산의 보전, 임시 망명과 적절한 시기의 귀국권을 보장한다는 공동성명을 낸 것과 관련해, 파티 보좌관은 “우리에겐 그런 선언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동성명의 효력을 부인했다.
국제인권변호사인 리드 브로디는 <에이피> 통신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 성명이 자메에게 최대한 보호를 제공한다고 해도 고문,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정치적 살인 등 특정 범죄는 국제법상 면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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