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의료진이 6일(현지시각) 다마스쿠스 인근 병원에서 북서부 칸샤이쿤에서 자행된 화학무기 공격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2013년에 이어 이번에도 대규모 화학무기 공격을 자행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들은 화학무기 공격의 희생자들에게 연대의 뜻을 표하려 이곳에 모였다. 다마스쿠스/AFP 연합뉴스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왜 입지 축소를 자초할 화학무기를 사용했을까?
시리아군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응해 미군이 미사일 공격에 나서기 전까지, 아사드 정권은 내전 이후 최고의 입지를 누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반군이나 이슬람국가(IS)로부터 근거지를 많이 탈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 축출이 최우선이 아니라며, 아사드 정부를 인정하는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아 정부가 국제적 비난을 자초할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스스로 입지를 파괴해버린 행동이다.
아사드 정권은 화학무기 사용을 강력히 부인한다. 왈리드 무알림 시리아 외무장관은 6일 “시리아군은 그런 화학무기를 우리 주민에 대해서도 테러리스트에 대해서도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하지도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쪽은 반군이 통제하는 화학무기 저장소에 폭탄이 떨어져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시리아 정부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관측통들의 증언과 과거 정부군의 행태를 보면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건 당일인 4일 새벽 칸샤이쿤 상공에서는 시리아의 수호이-22 전투기가 선회했고, 여기서 투하된 폭탄이 터지며 노란 버섯구름이 치솟았다는 게 주민들 증언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2013년에도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폭격도 고려하다가, 협상으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를 확인하고 대량 폐기하기도 했다.
관측통들은 화학무기 사용이 아사드 정권이 오랫동안 구사해온 반정부 세력 대처 전략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아사드 정권은 반정부 세력, 특히 이슬람주의 세력을 진압하면서 주변 민간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전면적 말살 정책을 구사해 왔다.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은 1982년 무슬림형제단의 본거지인 하마에서 2만5천명을 죽이는 대학살을 저질렀다. 이번 내전에서도 자신들의 통제 밖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초토화 전략을 써 왔다.
하지만 화학무기 공격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도 딜레마에 처하게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꿈꾸던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밀월관계가 물건너가는 것은 물론이고 중동 내 입지도 타격을 받게 됐다. 트럼프는 이번 시리아 공습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공습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다만 미군이 공격 직전에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이번 공격은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에 중대한 타격”이라며 “테러리즘에 맞서는 국제적 동맹 구축에 심각한 장애를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이번 공습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러시아도 군사적 대응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시리아에 배치된 러시아군 방공망은 그동안 미군을 겨냥하지 않았다. 이제 미군을 겨냥해 방공망 등을 가동하면 미군의 이슬람국가 격퇴전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공격에 따라 시리아 영공에서의 미-러 충돌을 막기 위한 협정의 효력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전투기 수십대와 최신 방공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해놓고 있다.
아사드 정권은 반군을 실질적으로 제압해야 내전 종식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의 입지를 약화시킬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단기적으로는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커지겠지만, 6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을 끝낼 장기적 해법은 특단의 외교적 대타결이 없는 한 더 꼬일 수밖에 없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